글/하남길(경상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야구는 미국의 국민적 게임이지만 한국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가 되었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대회를 끝으로 야구는 올림픽에서 퇴출되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지금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우리로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야구가 올림픽에서 퇴출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한 이유는 야구를 하는 나라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깊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조상이 같은 두 종류의 스포츠가 문화적 충돌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각종 놀이를 조직화하여 근대적인 스포츠로 바꾸어 놓았고, 그러한 스포츠는 전 세계로 수출되었다. 북미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국의 경마, 골프, 테니스, 크리켓 등이 북미 상류층의 주된 레저 문화로 전파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영국적 전통을 깨고 새로운 버전의 스포츠 문화를 창달했다. 농구와 배구를 창안했으며, 럭비와 하키는 북미식 버전의 미식축구와 아이스하키로, 크리켓의 조상인 라운더스(rounders)는 야구로 태어났다. 이러한 문화 재생산 과정에서 영국의 럭비나 크리켓은 미식축구와 야구의 발달로 인해 미국 땅에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가 야구도, 크리켓도 올림픽에서 퇴출되는 역사로 이어지게 되었다.

 영국에는 15세기부터 다양한 형태의 볼 게임이 존재했다. 테니스, 셔틀콕, 하키, 볼링 등과 유사한 놀이 문화가 존재했고, 스툴볼(stool-ball), 라운더스(rounders)의 조상으로 크리켓 경기가 일반화되자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1760년대 햄프셔 햄블던(Hambldon)에는 크리켓 클럽이 생겨났다. 크리켓은 피치로 불리는 운동장에 두 개의 삼주문이 스툴볼의 표적 판 역할을 했다. 오늘날 배트맨으로 불리는 타자는 피치(pitch)의 한 쪽 끝에 서서 삼주문을 방어하는 반면, 보울러로 불리는 투수는 맞은편에서 공을 던져 타자 뒤에 있는 삼주문을 무너뜨림으로서 타자를 아웃시키는 경기였다. 1787년 런던 로즈구장(Lord's ground)에 MCC(Marylebone Cricket Club)가 창립된 이래 크리켓은 가장 역사가 깊은 근대 스포츠로 등장했고, 영연방권에서 '스포츠의 여왕(queen of sport)'으로 불리게 되었다. 크리켓이 북미에 전해진 것은 18세기였다. 1751년에 아메리카 식민지 대표 11명과 런던 대표 11명이 경기를 했고, 식민지 팀이 이겼다. 그것이 아메리카 스포츠 역사 최초의 국제 시합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야구 문화가 성장하면서 미국 땅의 크리켓 문화는 점차 시들기 시작했다. 크리켓이 야구에 밀려버린 것이다.

 라운더스의 조상이 스툴볼이었다면 크리켓과 라운더스는 형제인 셈이고, 야구의 기원이 라운더스에 있다면 크리켓과 야구는 혈통이 같은 셈이다. 라운더스는 미국 뉴잉글랜드로 전해진 이후 두 종류의 게임으로 변천되다가 근대 야구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리켓과 유사한 버전의 야구가 발달되면서 미국 땅에서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크리켓도 한 때 올림픽 종목이었고, 야구도 올림픽 종목이었으나 두 종목이 모두 퇴출되었다. 영국 식민지였거나 영연방 권에서는 지금도 야구는 하지 않거나 인기가 없는 스포츠이고 크리켓에는 구름관중이 몰린다. 반면 미국의 문화 식민지 권에서는 크리켓은 잘 모르고 야구에 흥분한다. 두 종목 모두 세계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야구가 크리켓의 확산을 방해하고, 크리켓은 야구의 확산을 방해하는 동질적 스포츠의 문화적 충돌 현상 때문이다. 두 스포츠가 축구처럼 세계적인 스포츠가 되지 못하고 올림픽에서 퇴출된 것은 역사적 숙명이다.(hng5713@gnu.ac.kr)

 

* 참고 문헌
하남길, 체육사 신론 (진주: 경상대학교출판부, 2010), p. 170.
David G. McComb, Sports in World History (New York & London : Routledge , 2004), p. 37.
Charles Blancke, "Cricket in America," Harper's Weekly, XXXV(September 26, 1891), p.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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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오화석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구름한점없는 파란 하늘 아래 뺨을 스쳐가는 바람이 여유롭게 가을을 만끽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최근들어 서울 도심에서 휴일을 만끽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중국인 관광객들이라고 한다. 2007년 92만명에 불과하던 중국인의 한국방문은 2010년엔 172만명으로 급속히 늘어 서울과 제주 등지로 몰렸다는 소식이다.  

한국과 중국간의 상호 방문객수가 6백만을 상회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올림픽스포츠분야에서의 한중 상호방문도 발전의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지난 9월 20일(화) ∼ 24(토) (14th World Conference on Sport for All) 까지 베이징에서는 세계생활체육총회가 열렸고 대한체육회에서도 참가자를 공개선발하여 베이징에 파견하기도 했다.

  

                                                   (북경 올림픽 공원내의 실내체육관)

베이징 올림픽이 열린지 이제 3년이 지나고 있는데 베이징올림픽의 유산(Legacy) 을 중국의 지속적인 발전의 모멘텀으로 삼으려는 모습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필자는 베이징에서 연이어 주최하는 메가스포츠이벤트와 청년들의 자원봉사 분야에서 베이징올림픽의 유산을 분석해보려 한다.

베이징올림픽 이후에도 올림픽의 감동을 느끼고자 북경올림픽공원을 방문하는 중국인들의 물결은 여전히 이어지는 듯하다. 올림픽 이후에도 베이징은 꾸준히 메가스포츠이벤트를 유치하거나 이미 개최한 바가 있다. 작년 8월에는 Sportaccord 의 첫 번째 무술(martial art)게임이 4일간 베이징에서 열렸다. 올해는 앞서 언급한대로 올림픽공원내의 exhibition center에서 세계생활체육총회가 열렸고, 2015IAAF 세계육상선수권대회도 올해 베이징으로 유치하였다. 연이은 메가스포츠이벤트를 개최하면서 운영능력 역시 발전할 것이고,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중국청년들이 자원봉사 경험을 축적하여 이후 상당수의 스포츠엘리트 인재로서 국제스포츠분야에서 중국을 대표하여 활동할 만한 가능성이다. 아테네 올림픽 당시 아테네조직위 추산으로 자원봉사자 지원자수가 160000명이었는데, 실제 선발되어 참여한 자원봉사수로 계산하면 베이징 올림픽의 경우 KBS 보도자료에 의하면 공식자원봉사자 수는 50만명, 북경시 자원봉사자까지 170만명이라고 한다.

이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1년 센젠 하계유니버시아드, 2014년 난징 하계 유스올림픽등 메가스포츠이벤트등이 이어지면서, 올림픽 자원봉사를 경험했던 중국청년들이 지속적으로 메가스포츠이벤트에 참여하면서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이후 중국의 막강한 스포츠외교인재풀로 성장할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필자의 경험을 비추어보건대, 밴쿠버 올림픽 선수촌에서 만난 중국 대학생은 베이징올림픽 당시 한국선수단을 지원하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여 그 때의 인연으로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자원봉사자로 지원하면서 밴쿠버 까지 날라와 한국팀을 다녀가고 있었다. 또한 최근 제1회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유스 올림픽(인스부르크는 동계올림픽을 2, 유스올림픽까지 3번의 올림픽을 유치하게 된 곳이다.) 자원봉사 뉴스레터에 한 중국 대학생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베이징 올림픽에서 시작하여, 작년 8월 싱가폴 유스 올림픽, 작년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의 자원봉사를 발판삼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자원봉사까지 지원하게 되었다는 인터뷰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인스부르크 자원봉사 뉴스레터 'Hotspot' 6월호 인터뷰중)

중국의 경우, 본토인구숫자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전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화교들이 현지에서 열리는 메가스포츠이벤트에 자원봉사로 참여하여 중국선수단을 직,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법학부를 다닐 때 아테네 올림픽 조직위 자원봉사자로 탁구경기장에서 한국어-영어 통역을 하던 시절, 대부분의 그리스인, 그리고 유학 온 몇몇의 중국학생들에 섞여 유일하게 한국에서 자비를 들여 비행기를 타고 참여했었다. 유승민선수가 남자 단식 결승에 올랐을 때는, 상대방 중국선수인 왕하오의 중국응원단과 응원을 맞서기 위해 그리스어로 유승민 선수 응원가를 만들어 그리스 현지 관중을 우리편으로 만드는 등 응원단의 수적 열세를 만회하였고 마침내 금메달을 따는 영광스러운 순간에 한켠에 서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17일간의 열전을 치르면, 메가스포츠운영과 관련한 배치분야의 노하우를 익히고 돌아오게 된다. 베이징올림픽으로 경험한 이런 청년들이 170만명이다. 이들중 앞서 소개한 인터뷰의 주인공처럼 여러번의 메가이벤트를 경험한 중국 청년들이 수백, 수천명씩 생기고, 이들이 중국 뿐만아니라 국제사회의 중추가 되는 10-15년뒤에 그중 일부라도, 중국 스포츠를 튼튼히 받쳐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른다.

끝으로 43백만이라는 적지 않은 인구, 그리고 청년 스포츠엘리트들이 국내외 메가스포츠이벤트의 자원봉사 경험을 축적하는 것도 메가이벤트의 양적 참여도를 높여 이들이 거점이 되어 저변를 넓힐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의 한국에 대한 홍보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점에서 스포츠인재양성을 화두로 한 최근의 대화에서 한번쯤 생각해 볼 점이 아닌가 하며 글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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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이병진(국민생활체육회 정보미디어부장)
 
바야흐로 정보화, 디지털시대로 접어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전통적 산업사회가 가부장적, 남성 중심
적인 사회였다면 미래사회는 부드럽고 섬세한 감성과 창의성에 기초한 여성적 사고가 그 중심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한다.

맞물려, 각계에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계는 물론이거니와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경찰, 군, 법조계에서도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스포츠계도 예외는 아니다.

                                                                                                사진출처 : 뉴시스

40여 년간 국제대회에서 국위선양에 앞장서 온 여성들

스포츠계에 있어서 여성들의 활약은 실로 눈부시다. 1967년 체코에서 열린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에서 구기종목 사상 첫 은메달을 거머쥔 것을 시작으로, 1973년 유고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여자단체전 금메달을 차지했다. 정부 수립 후 구기종목 첫 우승이었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여자배구가 동메달을 땄다. 이 또한 올림픽 구기종목 사상 첫 메달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여자 핸드볼팀이 올림픽 구기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따냈다. 1984년부터 6회
연속 이어온 여자 양궁의 '올림픽 신궁 계보'도 '위업 중의 위업'이다.

1990년대 들어서는 '골프 낭자군'이 그 위력을 드러냈다. 박세리가 1998년 LPGA투어 US오픈에서 우승하며 한국 골프 사상 최초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이후 김미현, 박지은, 장정, 신지애 등이 세계 여자
골프계를 지배하고 있다.

역도 장미란은 여자 +75kg급에서 세계선수권 4연패와 베이징올림픽 세계신기록 금메달을 땄고, '피겨 여왕' 김연아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사상 최고점수라는 기적을 만들었다. 여자축구에서도 그 위력을 드러냈다.  FIFA 여자월드컵 U-20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데 이어 최근에는 U-17대회에서 감격의 우승컵을 차지했다.


여성들 생활체육에 폭넓게 참여, 스포츠산업에도 기여

국가대표 낭자들의 쾌거에 힘입어 생활체육에도 여성들의 참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근린생활체육공원이나 강변 둔치, 학교운동장마다 형형색색의 복장을 한 여성동호인들이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으며, 각 지역별로 문화체육센터나 주민자치센터 생활체육교실에서도 여성들의 함성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배드민턴이나 볼링, 에어로빅스, 요가 등 가벼운 종목에만 참여해 왔지만, 요즘은 레슬링,
복싱, 심지어는 철인3종경기, 이종격투기 등을 즐기는 여성들도 늘어나고 있다. 전국적으로 생활체육 여성축구단만 130개 이상 결성돼 있다.

스포츠산업에도 여성들의 힘은 매우 크다. 박세리의 성공이 한국 골프의 대중화에 기여한 것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고, 김연아의 올림픽 제패이후 '제2의 김연아'를 꿈꾸는 어린 아이들이 지금도 국내빙판을 메우고 있다.

프로야구 관중 600만 명 시대를 연 것도 여성 팬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여성 팬은 혼자보다 친구․가족․동료와 함께 경기장을 찾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스포츠관람 문화는 앞으로도 스포츠시장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성체육인들에 대한 배려 부족...꾸준한 정책지원 필요

여성들이 스포츠계에 있어 혁혁한 공헌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체육인들의 입지는 여전히
좁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대한체육회 산하 중앙 경기단체 이사 1천302명 중 여성은 86명(6.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전체 체육인 중 여성체육인이 30%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경기단체 지도자 2만7천826명 가운데 여성은 12.2%인 3천393명에 머물렀다.

이에 대해, 박선규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2011년부터 경기단체 여성임원 비율을 가맹단체 평가
항목으로 할 것”이라고 말하고 “3년 내 20%까지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매우 고무적이다.

여성체육인들은 척박한 국내환경을 딛고 국위선양을 해왔다. 특히, 대부분의 메달은 여성이 스포츠를 한다는 것에 대한 편견을 딛고 이뤄낸 결실들이다. 좋은 성적을 내면 그 때뿐, 여성스포츠에 대한 정책지원도 부족하고 국민들의 관심도 잠시뿐인 게 현실이다. 여성스포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이 필요하다.

생활체육도 마찬가지다. 여성들이 선호하는 종목을 수요조사해서 시설과 프로그램을 확충하는 노력을 꾸준히 경주해야 한다. 여성들이 차별받지 않은 사회가 진정한 스포츠선진국으로 가는 또 하나의 잣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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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김윤환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찌는 듯한 더위가 한 풀 꺾이고, 이제는 바야흐로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왔다. 성큼 다가온 시원한 가을 바람이 청아한 기분을 느끼게 하지만, 없는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가을 바람에 시린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나 같은 솔로에게는 달가운 일만은 아니다. 어쨌든 사랑하기에 좋은 계절, 가을이다. 그리고 또한 운동하기 좋은 계절, 가을이다. ‘오늘은 사랑하기에 좋은 계절’ 가을을 맞아서 가슴 따뜻한 러브 스토리를 준비했다.

 
스포츠는 보는 이에게 무한한 감동을 준다.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내며 신체를 극한까지 단련시키고, 수 없이 많은 연습과 경험을 통해 숨 막힐 듯한 긴장된 상황 속에서 멋진 경기를 보여주는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우린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격렬한 경기 장면 뒤에 숨겨진 인간 냄새 물씬 풍기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 또한 크다. 특히나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인기 스포츠 스타들의 알콩 달콩한 사랑 이야기는 더욱 그러하다. 냉혹하고 혹독한 스포츠 세계에서 피어난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올림픽 결승 경기보다 몇 배는 더 짜릿한 감동을 주는 그들의 사랑이야기 속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 - 미국의 사격선수 ‘매튜’와 체코의 사격선수 ‘카트리나’ 커플

베이징 올림픽 공기 소총 10m 본선. 32발까지 쏘고 8발을 남겨 놓은 체코의 ‘카트리나’ 선수가 갑자기 총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뒤 편 관계자 석으로 걸어가서 그 곳에 앉은 ‘매튜’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눴다. 경기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10여분. 매튜와 대화를 마친 카트리나는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다시 사대로 돌아왔다. 침착하게 총을 다시 잡은 그녀는 남은 8발을 모두 10점에 명중 시키며 400점 만점으로 본선 세계 신기록을 갱신했다. 사랑의 힘일까? 본선 만점의 상승세를 탄 카트리나는 결승전에서 503.5점을 기록해 2위를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상식 후 다시 한번 많은 관중 앞에서 열정의 키스를 나눈 두 사람.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4년 전 아테네 올림픽에서부터 시작 됐다. 당시 매튜는 50m 소총 복사 금메달을 따고, 50m 소총3자세에서 2관왕에 도전했다. 매튜는 9번째 샷까지 1위를 달리고 있다가 마지막 한 발을 자신의 과녁이 아닌 옆 선수의 과녁을 맞히는 어이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1위에서 꼴지로 떨어진 매튜는 결국 금메달을 놓쳤고 세상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놀렸다. 그러나 단 한사람, 당시에 그 경기 해설을 맡고 있던 카트리나는 상처를 받은 매튜의 모습에 연민을 느끼고 그를 위로했다. 둘은 사랑에 빠졌고 결혼에 골인했다. 
  
 
둘 사이에 더욱 더 영화 같은 이야기가 하나 더 남았으니...

4년 후 베이징 올림픽. 남자 50m 소총 복사에서 은메달을 딴 매튜는 4년 전의 악몽을 씻기 위하여 50m 소총3자세에서 최고의 경기를 보여줬다. 9번째 샷까지 단 2발만을 제외하고 전부 10점 이상의 높은 점수를 기록하며 1위를 달리고 있던 매튜는... 마지막 10번째 샷에서 4.4의 점수를 기록하며 4위로 추락하게 된다. 4년 전의 악몽이 다시 한번 재현된 것이다. 이 둘의 사랑을 신이 질투라도 한 것일까?

 

                               경기가 끝나고 상심에 빠져 있는 매튜에게 다가간 카트리나.



카트리나는 매튜에게 “4.4를 쏘고도 4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라며 그를 위로했고, 매튜 역시 우승자에게 진심으로 따뜻한 축하의 인사와 포옹을 전했다고 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들의 사랑 이야기. 2004년에도, 2008년에도 매튜는 최악의 미스샷을 했다. 그렇지만 그 미스샷이 인생 최고의 나이스 샷이었던 것이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 - 한국 탁구 선수 ‘안재형’과 중국 탁구 선수 ‘자오즈민’의 사랑

스포츠 스타 커플로 안재형과 자오즈민 커플을 빼 놓을 수 없다. 안재형과 자오즈민은 모두 뛰어난 기량을 가진 탁구 선수 였다. 
 
자오즈민은 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 여자단식 금메달, 87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선 여자단체전 금메달, 88년 서울올림픽에선 여자단식 동메달과 여자복식 은메달 등 2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실력 뿐만 아니라 외모 또한 중국 최고 미녀 스포츠 스타로 이름이 높았다. 안재형도 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 단체전 우승을 차지한 것에 이어 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선 혼합복식 동메달, 88년 서울올림픽 남자복식 동메달을 거머쥐며 실력을 뽐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들은 84년 파키스탄에서 열린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 만났는데, 당시는 냉전이 끝나지 않았던 시대였고 한국과 중국이 미수교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불타는 사랑을 그 누가 막으리오? 자오즈민 에게 첫 눈에 반한 안재형은 서툰 중국어 시 한 편을 지어주며 사랑을 고백했고 그렇게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만남이 시작됐다. 두 사람은 국제대회에서 만날 때마다 편지를 주고받는 등 사랑을 키워갔다. 그렇게 어려운 사랑을 키워가던 두 사람은 이념 갈등의 극복과 동서화해를 모토로 내세운 88올림픽 이 후 그들의 사랑은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결국 안재형 자오즈민 커플은 1989년 10월 스웨덴에서 결혼에 골인했다.

현재 안재형 자오즈민 부부는 골프선수인 아들 안병훈과 함께 미국에 거주 중이다.

’사랑은 깊고 열정적으로 하라. 상처받을 수도 있지만 그것만이 완전한 삶을 사는 유일한 길이다.’  ‘삶을 위한 지침’ 이라는 시에 나오는 글귀이다. 사랑만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 삶에서 사랑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고 황폐한 삶이 될까? 이 가슴 따뜻한 두 커플의 이야기가 당신의 가슴 속에 오랜 메아리로 남게 되길 바란다. 또한 나를 비롯한 많은 솔로들의 시린 옆구리를 따뜻하게 데워 줄 ‘핫팩’ 같은 이야기가 되어주길 바란다.

스포츠는 아름답다. 그리고, 사랑이 더해진 스포츠는 더욱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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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김정효 (신도봉중학교 교사) 

김연아의 환상적인 ‘점프’에서 우리는 인간의 신체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전율한다.
마지막 동작이 멈춘 후 클로즈업되는 그녀의 도발적인 표정은 마치 예술과 스포츠의 경계를
되묻는 듯 하지 않는가. 혹자는 시상식의 태극기를 바라보며 더불어 게양되는 대한민국의
위상에 가슴 뿌듯해 하기도 한다. 어느새 김연아는 꿈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온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전령사는 그녀뿐이 아니다. 박지성과 장미란, 태극기를
가슴에 달았던 베이징올림픽의 야구선수들도 모두 그녀에 버금가는 희망의 전령사들이었다.
이들을 흔히 우리는 ‘엘리트스포츠 선수’라 부른다. 그리고 미디어는 시청자들을 흥분시킨
그들의 공적을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한다. 그들이 국민에게 안겨준 꿈과 희망의 질량을
계산하면 이러한 찬사는 수사학적 미사여구나 언론의 자극적 선동을 뛰어넘는다. 

 
그러나 막상 그들을 길러낸 우리 사회의 스포츠인프라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주저하거나
얼버무린다. 말하기는 한다. WBC의 준우승 이후 돔구장의 부재가 마치 우승을 놓친 결정적인
이유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는 했다. 왜 김연아의 우승에는 열광하면서 제2의 김연아를
만들어 낼 물적 토대와 정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걸까. 차라리 후진적 환경을 적당히
방치함으로써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승리의 시나리오를 즐기는데 우리는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혹자는 말한다. 우리나라의 스포츠정책이 너무 엘리트스포츠에
편중되어 있다고. 이제 체육정책의 방향은 엘리트스포츠라는 편협한 민족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 모두가 즐기는 생활체육, 혹은 사회체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그들의 따끔한 질책과 비판에는 충분히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엘리트스포츠가 생활
체육과는 전혀 다른 원리적 토대를 가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 물론 국가에
의한 스포츠의 이데올로기적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할 경우 엘리트스포츠는 한국 사회만의
독특한 스포츠문화로서 그 한계를 가진다.

박태환의 금메달이 잠시 국민을 흥분시키는 국가적 오락이거나 실체 없는 민족주의의 허상일
수 있다. 하지만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김연아와 박태환, 박지성 개인을 묻는 것이 아니다. 가령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양정모가 당시 체제 이데올로기의 선전에 커다란
몫을 한 것과는 별개로 그의 메달은 한국의 레슬링 문화의 중요한 성과이며 그 후 비약적인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해 왔다. 요컨대 스포츠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유효기간을 갖는
일시적이고 한정적인 것이나 그 문화적 내용은 역사적이고 또한 현재적이다.

스포츠는 문화의 형태로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문화 외적인 것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만큼 파급력이 크다는 사실에서 비롯할 뿐이다. 자연인이 아닌 스포츠 선수로서의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을 위해 존재한다. 그녀의 신체능력은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운동문화를 매개로
극한까지 펼쳐지며 이를 통해 피겨스케이팅은 보다 진일보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우사인
볼트의 개인적인 신체능력에 의해 100m의 기록이 갱신되듯이.

엘리트스포츠가 생활체육과 준별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엘리트스포츠가 이미 존재하는
운동문화, 즉 개별 스포츠 종목에 참여하는 개인의 뛰어난 신체능력을 통해 보다 발전된
운동문화로 전승되는 과정이라면, 생활체육은 한 개인의 신체능력이 특정 스포츠 종목을
행함으로써 보다 발전된 신체능력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말한다.

이를 알기 쉽게 설명하면 마라톤이 생활체육에서는 심폐지구력과 체중감량 등의 개인적
신체능력의 향상을 목표로 하지만 그것이 엘리트스포츠로 전환하면 마라톤 자체의 질적 변화
즉 새로운 기록 작성이 목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엘리트스포츠와 생활체육은 각기 문화적
위상을 달리 한다. 엘리트스포츠가 해당 스포츠의 질적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면 생활체육은
그 양적 변화와 깊은 연관을 갖는다. 이런 까닭에 생활체육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엘리트
스포츠의 발전을 담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엘리트스포츠에서 필수적인 고도의 신체능력은
전문성과 체계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배드민턴 동호회의 양적 팽창과 ‘이용대’라는 걸출한
엘리트 선수의 배출 사이에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생활체육의 저 발전을 엘리트스포츠의 비대화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그 둘을 동시에
끌어 올리는 정책과 인식의 전환이다. 엘리트스포츠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생활체육의 질을
견인한다. 아니 견인하여야 한다. 은퇴 후의 김연아와 박태환이, 혹은 그들을 롤 모델로 삼았던
엘리트 선수 출신들이 어린이와 직장인을 대상으로 피겨스케이팅과 수영을 가르치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엘리트스포츠는 생활체육의 적이 아니라 희망이 되어야 한다. 다만 그 피드백의 고리를
어떻게만들 것인가가 향후의 과제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엘리트스포츠에 더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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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장덕선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무더운 날씨 속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한창 진행되었던 북경, 조금은 어렵게 들어온
선수촌인지라 한 명의 대표선수라도 더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선수촌 앞마당을 서성거리고
있을 때 낮 익은 선수와 코치를 만났다. 한발의 미스로 2004년 아테네에서 진한 아쉬움을
주었던, 그리고 4년 후 2008년 보란 듯이 금메달(50m 권총)을 안겨준, 거기에 보너스로
은메달(10m 공기권총)까지 선물한 사격의 영웅 진종오 선수였다. 그 옆을 그림자처럼 지키는
지도자는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김선일 코치였다. 진종오는 경기 후 "본선 마지막에 실수를
한 것이 내게 좋은 기회를 준 것 같다"면서 "코치(김선일)님이 욕심 부리지 말고 편히 하라고
해서 나름대로 했는데 이렇게 금메달이 저에게 주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2008 베이징 뜨거운 키스



                                                          김선일 코치와 환호하는 진종오      



올해 그는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9 국제사격연맹(ISSF) 월드컵파이널대회
50m와 10m 권총에서 2관왕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왕중왕’이 되었다. 그의 기량에 반한
미국사격연맹이 우수선수를 초청해 노하우를 전수받는다는 취지로 진선수를 초청해서
콜로라도에서 미 대표 팀과 합숙훈련을 하기도 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대회가 끝난 후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지만 진종오 처럼 한결같은 선수는 처음이라는 극찬에 그는 “빨리
잊었어요. 코치님이 ‘지금은 금메달을 땄다며 관심이 몰리겠지만 길어봐야 3개월이다. 빨리
털어 내는 게 본인에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죠.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목표는 무슨 무슨 대회
금메달보다 사격을 정말 잘한다고 인정받는 선수가 되는 것”이라며 “사격은 몸 관리에
신경 쓰면 10년을 더 할 수 있는 운동이니까 선수생활 동안 목표를 설정해 계속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의 만남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거의 4년 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이면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훈련방식에는 특별한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선수와 지도자 사이는 어떠한가?
전자의 질문은 4년의 세월에
그 맘을 유지하여 메달을 딸 수 있었던 배경이 궁금했고, 후자의 질문은 북경 선수촌에서
경험한 국가대표 지도자와 선수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선수와
지도자가 서로를 신뢰하고 선수의 리듬에 맞는 훈련방식을 선호하며, 특별한 기술훈련보다는
오랫동안 호흡을 함께 했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해주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훈련
을 해왔다고
했다. 엘리트 선수들을 인터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남과 구별되는 특별한 것을 찾기
어렵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낚시다. 전지 훈련하는 곳이 어디건 낚시터를 찾는다. 아마도
자연과의 합일을 통해 마음을 순화시키는 방법을 아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감과 자유권총
사격기술에 대한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지만 자신을 지키는 비밀병기 같은 것이어서 아직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스스로 하는 자율훈련 속에서 지도자와 선수의 불화는커녕
아우인양, 형님인양 사격도 낚시도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이들에게 훈련과정에서 겪는 심각한
갈등은 없는 듯하다.

베이징 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 필자는 물리치료실에서 선수들의 동정을 살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말을 섞고 마음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지도자와 심각한 갈등을 겪는
선수들도 많이 보았다. 시합에 대한 계획과 준비보다 지도자에 대한 반감과 불평으로 가득한
선수에게 메달을 기대할 수는 없다. 혼신을 다해도 부족한 시간에 에너지를 분산시켜 낭비한다.
상담은 이러한 문제를 완화시켜주고 해결책을 찾게 해주고 궁극적으로 경기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상담은 일련의 과정이기 때문에 시합기간의 만남으로 그 성과를
보기는 어렵다.

진종오 선수와의 인터뷰 말미에 한 가지 부탁을 받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체육과학연구원 소속이었던 필자는 사격대표팀 훈련이 있었던 임실의 사격장을 찾아가
심리교육을 실시한 적이 있다. 훈련 후 지방도로 옆 식당에서 저녁식사 전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장소가 마땅찮아 식당 마당 한 켠의 간이의자에 모여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을 들으며
40여분 남짓 유인물을 보며 교육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쉽게 감이
오지 않았다. 아마도 올림픽 대비 시합준비 전략에 관한 내용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때
나누어준 유인물을 4년 동안 봐 와서 종이가 너덜너덜 헤어져 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내용 중 다행히 어떤 부분으로 인해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아닌
진종오 선수의 태도이다. 필자는 팀 혹은 개별선수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교육을 하면서
가능한 유인물을 준비해서 배포한다. 어떤 선수는 바로 그 자리에 유인물을 흘리고 가버리고,
가다가 버리고, 책상에 던져두고, 너무 잘 간직해서 어디에 둔지 모르고 지낼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금메달리스트는 그 유인물을 간직해서 보고, 읽고, 자신에 맞게 응용한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격술에 적용해보는 그의 자세로 인해 한동안 가슴 먹먹한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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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김형석 (국민대학교 스포츠마케팅연구실 연구원)

지구촌 최대 축제인 월드컵이 돌아온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 조 추첨식이 오는 5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열린다. 본선 출전 32개국
중에는 7회 연속 진출 업적을 달성한 한국도 포함되어 있다. 때문에 국내에서는 한국이 본선에서
받게 될 조 추첨 성적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가 오고 가는 등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팬들은 조 추첨
결과뿐 만 아니라 세계 톱 클래스 선수들이 그라운드 안에서 펼치는 승부와 사령탑들의 지략대결
등을 기대하며 남아공월드컵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기업들의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굴지의 기업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월드컵을 앞두고
벌써부터 스포츠마케팅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기획과 실행을 반복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공식 후원사들은 대회 주최 측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불하며 얻은 권리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으며, 권리를 얻지 못한 동종 일반 기업들은 매복 마케팅(Ambush Marketing)
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이용, 대회 주최 측과 공식 스폰서 기업의 매서운 눈초리를
교묘히 피해갈 방법 마련에 골몰 중이다.

 
이런 현상은 월드컵과 하계, 동계 올림픽 등 전 세계가 즐기는 메가 스포츠 이벤트(Mega
Sports Event)에서 꾸준히 반복
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예는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당장 개회식부터 말썽
속에 치러졌다. 대회 개최지인 중국에서 내세운 성화 최종봉송주자는 리닝이라는 중국 남자
체조대표 출신 스포츠용품사 회장이었다. 올림픽 공식 후원사 아디다스는 리닝이 성화를
들고 궈자티위창(국가체육장.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허공을 달리는 모습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전달되고 있음에도 손 쓸 방법도 없이 TV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리닝은 이뿐만 아니라 올림픽개최 1년 전부터 대회 폐막시까지 중국 및 전 세계의 올림픽
관련 소식을 전하는 관영 신화통신(CCTV)의 진행자들에게 리닝 상표가 붙은 옷을 입혀 TV에
출연케 하는 등 지독한 매복 마케팅을 펼쳤다. 이밖에 나이키, 푸마, 펩시 등 다국적 기업과
중국 기업들의 무차별 공세도 대회기간 내내 이어졌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베이징올림픽
위원회(BOCOG)는 ‘반 매복마케팅(Anti-Ambush Marketing) 캠페인’을 벌이는 등 사력을 다했으나,
드넓은 베이징 시내 곳곳 빌딩에 홍보관을 숨겨둔 채 언론 및 팬들의 발길을 끌어들인 이들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매복 마케팅이란 공식 스폰서가 아닌 동종 일반 기업이 스포츠이벤트를 통해 마치
공식스폰서인 것처럼 대중을 현혹, 공식 스폰서가 대회 스폰서십을 통해 기대하는
효과의 일부를 획득하는 활동을 일컫는 것이다.

이는 공식 스폰서가 되지 못한 기업의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공식스폰서로 참여한 기업이
독점적 권리(Exclusive Rights)라는 강력한 무기를 등에 업고 엄청난 수익 효과를 얻는 것을
본 경쟁 기업은 수익창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매복 마케팅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매복 마케팅은 사전에 철저히 준비 및 계획된 의도적인 기업 활동으로 우연히 발생하는
일회성 광고효과가 아닌,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주면서 대회 공식 스폰서의 존재를 흐리게
하거나 심지어는 해당사가 공식 스폰서로 인식하게 하는 전략에 근거
한다.

과거의 매복 마케팅은 대회 주최 측 및 공식 스폰서의 법적 대응을 우려, 단기간 활동을
전제로 했지만, 최근에는 이들의 시야를 최대한 벗어날 수 있는 범위 속에 중장기간 활동한다.
베이징올림픽 당시 무수한 매복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IOC와 BOCOG의 대응이 미약했던
이유는 중국 내에 ‘매복 마케팅’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이뤄지지 않는 점도 있지만, 매복
마케팅에 참여한 회사의 주도면밀한 준비와 치밀한 대응이 주된 원인이다.

매복 마케팅의 또 다른 특징은 선수보증광고(Endorsement)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스포츠 팬들이 대회 공식 스폰서보다 우수한 성적을 올리는 유명 선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베이징올림픽 당시 남자 육상 3관왕 우사인 볼트는 금메달을
딸 때마다 기록이 게시된 전광판에 서서 푸마 로고가 선명한 스파이크를 얼굴에 대고 취재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볼트의 환한 미소와 푸마 로고가 전 세계의 안방으로 전달될 동안
아디다스는 쓴 잔을 들이켰고, 푸마는 쾌재를 불렀다.

베이징올림픽을 중심으로 매복 마케팅의 예를 들었지만, 2002한일월드컵에서도 비슷한 예는
있었다. 당시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을 후원했던 나이키는 전 국민이 환호한 4강 신화 속에
엄청난 수익을 챙겼다. 한국과 함께 후원한 브라질 대표팀이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얻은 수익도
컸다. 당시 나이키의 이익은 공식 후원사 아디다스를 앞선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공식 스폰서로부터 엄청난 돈을 받으며 대회를 꾸려나가는 주최 측이 매복 마케팅을
방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매복 마케팅을 뛰어넘는 더욱 강력한 무기를 통해 이들의 힘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2006독일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FIFA와 독일월드컵조직위원회는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인들이
특정 장소에 모여 축구중계를 시청하며 환호하는 일명 거리응원에 착안, 월드컵 본선이 열리는
독일 내 12개 도시 광장에 ‘팬 페스트 존(Fan Fest Zone)'을 마련했다.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광장의 넓은 공간에 월드컵 경기를 마음껏 시청할 수 있는 대형 멀티비전과 공식 후원사가
마련한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는 팬 페스트 존은 직접 경기장을 찾지 못한 채 거리를
배회하던 축구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독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와
16강 전 등 총 56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1,100 만 여명이 팬 페스트 존을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한일월드컵 당시 거리응원에 참여했던 인원에 비해 25% 가량 늘어난 수치다.

또한 FIFA는 경기장 100m 전방부터 입장하는 관중 및 주변 상황을 철저히 단속, 매복 마케팅을
원천 봉쇄했다. FIFA의 공식 스폰서에서 만들었거나 제공한 상품이 아니면 상표를 가리거나
떼어낸 뒤 경기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공식 스폰서 경쟁 기업들의 부스는 경기장 근처에 아예
발을 들이지도 못했다.

매복 마케팅에 철퇴를 내리겠다고 공언했던 FIFA의 대반격 속에 월드컵 개최도시의 시내 중심부
및 역, 광장 등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준비했던 경쟁 기업들은 기대 이하의 실적을 올리는데
그쳤다. 독일월드컵에서 4년 전의 영광 재현을 노렸던 나이키는 아디다스를 밀어내고 축구 용품
업계 1위에 오르겠다는 야심을 접어야 했다. 특히, 나이키는 2000년 당시 네덜란드-벨기에가
공동개최한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00) 당시 펜 페스트 존과 유사한 ‘나이키 존’을 설치, 대회
공식후원사 아디다스를 넘는 실적을 올린 바 있어 독일월드컵에서의 패배는 더욱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반면, 한일월드컵에서 매복 마케팅 탓에 쓴 맛을 봤던 공식 파트너들은 FIFA의 반격에 활짝
웃었다. 펜 페스트 존에 홍보부스를 차린 현대자동차는  체험 형 공간을 만들어 팬들의 발길을
사로잡았고, 코카콜라는 음료, 맥도날드는 햄버거를 독점 판매하며 홍보와 수익 효과를 동시에
거뒀다. 경기장면이 중계되는 멀티비전 주변에는 필립스의 로고가 선명했다. 경기장 내에서도
이들의 부스가 마련돼 FIFA의 보호 하에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이 펼쳐졌다. 후원 기업에게 최고의
대우와 최상의 권리, 마케팅, 판매 조건을 제공, 만족을 이끌어내 향후 스폰서십 가치를 극대화
시키겠다는 FIFA의 노력이 빚어낸 결과물이었다.

이번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FIFA는 독일월드컵보다 더욱 강력한 스폰서 보호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베이징올림픽이 매복 마케팅의 잔치 속에 치러지는 것을 현장에서
똑똑히 목격한 FIFA는 벌써부터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하지만 독일월드컵에서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한 경쟁 기업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미지의 대륙 아프리카가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은 경쟁 기업의 매복 마케팅 욕구를 더욱 자극시킬 만하다. 일각에서는
베이징의 매복 마케팅 잔치가 남아공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어, FIFA와 공식
스폰서-경쟁 기업 간 맞대결은 벌써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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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 원장)



코펜하겐 IOC총회 時 베이징 올림픽조직위원회최종보고에 따르면 베이징대회는
미화30억1500만 불(한화 약 5조1600억 원)의 총 수입금 중 미화1억6700만 불
(한화 약 2500억 원)의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잉여금은 새로 설립된 ‘베이징올림픽발전협회(Beijing Olympic Development
Association)’가 기금운용 및 집행주체 역할
을 하게 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후 설립된 국민체육진흥공단(KSPO)을 벤치마킹한 듯하다.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BOCOG)는 IOC총회 최종보고 時 “Beijing: Once an Olympic
City, Always an Olympic City”(베이징: 한번 올림픽개최도시는 영원한 올림픽도시)란
슬로건을 선보이며, 베이징올림픽은 “기적이 창출되었으며 꿈이 실현된 올림피아드”
(Olympiad 'where miracles were created, dreams fulfilled')라고 자가 평가하였고
올림픽개최 이후의 베이징은 이제 더욱 더 깨끗해졌고(cleaner), 더 아름다운
(more beautiful)도시로 탈바꿈하였으며 올림픽덕분에 보다 더 편리해진 대중교통시설과
지속발전 가능한 경제성장(sustained economic growth)을 누리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한편 베이징올림픽 국제 성화 봉송 루트(International Torch Relay route)와 연계되었던
각종 정치적 시위는 올림픽대회 상징물이 오용된(misused) 실제사례로써 우려를
자아내게 하였다. 이를 계기로 IOC는 더 이상 국제 올림픽성화봉송을 실시하지
않기(International Torch Relay will no loner be held.)로 했다고 Verbruggen 베이징올림픽
IOC조정위원장이 언급하였다.

중국의 인권문제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서는 베이징대회를 통해 중국이 국제적
대화소통단계수준으로는 향상되었다고 하면서 “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의 부조리 등에
대해 관심을 쏟는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현실적으로 문제를 대처해야 하며 우리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는 스포츠와 올림픽대회에 국한된다.”라고 우회적으로 답변하였다.

Verbruggen위원장은 향후 올림픽개최도시들이 베이징올림픽의 규모(in scope)면이나
웅대함(grandeur)면에서 베이징과 필적하려고 따라 하지 않도록 충고하면서
“향후 올림픽개최도시들은 나름대로(in their own way) 올림픽 비전에 충실한 가운데
독특하고(unique) 영감을 주며(inspirational) 기여하는 방식의 올림픽대회를 조직하는데
눈을 돌려야 한다. 왜냐하면 2008년 올림픽은 많은 측면에 있어서 아마도 앞으로
필적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며 사실 그러하다.(Many aspects of the 2008 Games
may remain unmatched, and so be it.)”라고 결론지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대회는 규모 면이나 소요예산 면이나 시설 면에서도
그 웅장함과 거대함이 전무후무한 것만은 자명하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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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윤강로(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 원장)


2001년 모스크바 IOC총회 첫날 중국의 베이징이 2008년 올림픽개최도시로 선정되었다.
그 당시 쟁쟁했던 프랑스의 파리, 캐나다의 토론토를 비롯하여 다소 전력이 떨어졌지만
나름대로의 득표활동을 벌였던 터키의 이스탄불, 일본의 오사카를 모두 떨쳐 버리고
승리도시가 되었던 베이징에 대하여 비밀거래설이 국제 스포츠 계에 회자 되고 있다.

(According to the IOC, Jacques Rogge was elected IOC president by his merits,
not a backroom deal to bring the Olympics to China/ Getty Images)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최근 코펜하겐 IOC총회에서 4년 마지막 임기 재선에
성공한 자크 로게 IOC위원장(2001-2009 및 2009-2013)
이다.


(2009년 올림픽 IOC실사평가 첫 방문 후보도시인 베이징에서 시설 시찰중인 IOC 평가위원회 위원들
/ 좌로부터 Elizalde 필리핀 IOC위원, Sergey Bubka
당시 IOC선수위원장, 필자 등)


필자도 그 당시 2008년 올림픽 5개 유치후보도시 현지 실사 방문은 물론 평가보고서까지
작성하는 책임을 맡은 IOC평가위원회 위원으로서 모스크바 IOC 총회에 공식 참석하였고
2건의 선거결과 모두를 지켜보았다.


최근 전 중국 체육부장관 겸 중국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었던 Yuan Weimin의
회고록(memoirs)에 의하면 당시 IOC위원장 후보였던 자크 로게 현 IOC위원장 선거를
도와주는 대가로 로게 IOC위원장이 베이징의 2008년 올림픽유치로비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베이징은 올림픽유치에 성공했고 3일 후 Jacques Rogge후보는 IOC위원장에
선출되었다는 이야기이다.

The Sunday Times지는 “Yuan Weimin and the Sports World”라는 제목의 책에서
중국이 베이징 유치성공을 위한 유럽의 표를 만들어 내는 대가로 Rogge후보의
IOC위원장 선거개입을 승인하였고 아시아인이 IOC위원장이 되기를 희망하며
베이징을 지지했던 아시아국가들을 기만했다고 보도했다.

Yuan 전 장관은 그의 회고록에 “비록 Rogge후보와의 거래내용을 문서로 남기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뜻을 이해하고 있었다.”라고 썼다.

Yuan 전 장관은 그의 책에서 ‘스위스에서의 회동에서 Rogge후보가 “만약 파리가
올림픽유치에 성공한다면 자신의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 베이징이 유치해야 한다.”
라는 자신만의 이유를 설명했다.’ 라고 밝혔고,

중국 또한 Rogge후보와 그의 동료들(지지자들)이 베이징을 지지해 줄 것을 희망한다고
Rogge 후보에게 표현했으며 Rogge후보도 중국의 3명의 IOC위원들과 중국의 우방국들이
그를 지지해 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또한 Yuan 전 장관의 회고록에는 Rogge후보가 자신의 IOC위원장선거를 지지해
주어서 고맙고 자신 또한 베이징의 올림픽유치를 위해 최대한 지원 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자신이 파리와 이스탄불이 후보도시로 있는 유럽 올림픽위원회(EOC)
회장이므로 그의 입장과 생각을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없음을 중국측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며 그러나 베이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Rogge후보는 중국이 그와의 거래를 지키는지 재확인이 필요했다고 회고록에는
적혀있다. “물론 우리는 중국의 우방국가들이 Rogge후보를 지지하도록 설득할
것이라고 약속하였고 그 대가로 Rogge후보를 지지하는 유럽멤버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중국 대표 모두가 이 같은 증거 없는 거래에 관여하지는 않았고, 익명을
요구한 전 중국 IOC위원은 그가 Rogge후보에 투표하지 않고 아시아 대표인
한국의 김운용 후보를 지지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AP통신은 익명을 요구한 전 중국 IOC위원은 Zhenliang He(하진량:2009년 말
 IOC위원정년)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Yuan Weimin 전 중국 체육부장관은 그의 회고록에서 중국당국(China’s ruling politiburo)의
그 같은 지시가 Zhenliang He IOC위원을 화나게 했고, 그 지시는 당시 3명에 달했던
중국IOC위원들에게 Rogge후보에게 투표하도록 했다라는 이야기이다.

IOC는 이 사실을 부인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IOC본부가 있는 스위스 로잔의 소식통에 따르면 Jacques Rogge 후보는 상당수의
지지를 받아(by a large majority) IOC위원장에 당선되었으며 IOC위원장후보로서
그의 강력한 프로그램이 IOC위원들에게 환영을 받았고, “어떠한 거래가 있었다는
암시는 완전히 허위다.(Any insinuation that deals would have been made is
absolutely false.)”라고 일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어느 쪽 이야기가 진실일까? 그것의 진실여부는 증거부족으로 입증되기 어려우며
지금에 와서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도 시기 적절치 못하다. IOC나 중국이나 글로벌
올림픽운동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향후 이러한 주장이 제기 되지
않도록 확고부동한 제도개선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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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영진 (국민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역도는 최고의 효자 종목이였고,
그만큼 온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장미란 선수와 사재혁 선수의 금메달과 윤진희 선수 은메달로
자랑스러운 한국의 역사들은 한국 역도 사상 최대의 경기력을 발휘하였고,
만약 이배영 선수의 다리에 쥐가 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최소 은메달이 하나 더 추가되었을 것이다.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전병관 선수의 금메달 이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까지 노메달의 수모를 겪어왔고,
2004년 여자 75+ 급에서 중국의 탕공홍 선수에게 아쉽게 금메달을 넘겨주었던
순간이 있었지만 2008년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건 장미란 선수를 비롯해서
멋진 경기로 역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선수들이 얼마나 열심히 혹독하게
올림픽을 준비하였는지 옆에서 지켜보았던 필자로서 선수, 코치들에게
큰 환호와 칭찬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올림픽에서는 단하나의 메달을 따기 위해서도 피나는 노력과 남다른 방법들이
동원되고 그리고 그것들이 조화롭고 치밀하게 운영
되어야만 한다.
코치와 선수들 사이의 원만한 관계와 무한한 신뢰, 선수개인의 심리통제, 행동의 자제,
영양관리, 스포츠과학의 접목 등 여러 요인들이 함께 완벽히 어우러져야 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운영된 팀이 바로 역도종목이었고 2008년이 그 결실의 해였다.
선수촌에서 항상 모범이 되고, 잘 돌아간다는 칭찬을 도맡아 온 역도팀 이었기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 주었다고 판단된다. 

 



필자는 체육과학연구원 소속으로 역도종목 코디네이터이며 기술부분을 담당하여
과학적 지원을 수행해 왔다. 
지난 베이징올림픽을 대비하여 장미란 선수를 토대로 어떤 내용으로
스포츠과학이 현장에 적용
되었는지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장미란 선수는 앉아받기시 오른발이 뒤로 빠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러한 동작은 중·고등학교부터 시작된 잘못된 기술훈련에 기인됐다.<그림 1 참조>
앉아받기시 오른발이 뒤로 빠지는 문제로 인해 동작이 틀어지면서
왼쪽 승모근을 시작으로 골반, 팔꿈치 손목 등에서 통증을 호소하는 문제점이 발생
되었다.
사이벡스 테스트를 통해 대퇴내전근, 외전근, 허리신근 등
좌우근력의 차이를 검증하였고,
그 결과 근력의 좌우 발란스가 많이 틀어져 있고 이러한 결과가 동작을
틀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따라서 좌우 근력의 발란스를 맞추는 훈련을 실시하였고
점차적으로 근력의 좌우 발란스가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작은 틀어져 수행되었다.
또 다른 원인이 존재했던 것이다. 

  

바벨이 고관절을 지나면서 오른팔을 오른 상체를 많이 활용함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왼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동작에 의해 앉아받기시 바벨의 중량이 왼쪽으로 쏠리게 되고,
특히, 왼쪽 승모근에 큰 무리가 발생되고 있는 상태였다.



EMG(근전위활동) 분석을 실시하여 어느 정도 왼쪽 승모근에서 힘이 발현되는지에 대한
검증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오른쪽 승모근보다 왼쪽 승모근이 약 4-5배 정도
더 큰 근력이 발현되는 것을 알아냈다<그림 3>.

이는 장미란 선수의 왼 어깨부위에 부상당할 위험성이 크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주 운동을 잠시 정지하고 다시 상체근력을 보강, 좌우 근력 균형 맞추기,
라스트풀 동작이후 자세가 틀어지는 동작을 수정하기 위한 지속적인 인지훈련을 실시하였다.


즉, 몸이 틀어지지 않도록 거울을 보고 훈련하거나 옆에서 지속적으로
점검해주거나 카메라 촬영을 통해 즉각적 인지를 위한 피드백을 제공하였다.
그 결과 위 그림처럼 처치후 동작으로 바뀌게 되고 이러한 결과로 인해
무사히 베이징 올림픽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앞으로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한국 일산에서 개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대비해서 장미란 선수에게 넘어야 할 산이 있다.
2009년 7월에 개최된 한중일 대회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아직도 좌우 발란스가 많이 틀어져 있으며,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바벨이 무릎을 지난 후
고관절에 이어 라스트 풀동작을 수행할 때 고관절이 뒤로 빠져 있음으로 인해
가장 힘을 폭발적으로 힘을 써야 할 부분에서 제대로 쓰지 못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기술적으로 고관절과 바벨이 좀 더 가깝게 붙을 수 있도록 하고,
이러한 현상을 없애주는 근력강화 측면에서 상체근력(광배근, 승모근, 삼각근, 허리신근 등)을
강화시키는 노력이 꾸준이 진행되어야 할 것
이다.
또한, 좌우근력 발란스를 맞추는 작업도 계속해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올림픽메달은 선수 하나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수뿐만 아니라 감독, 행정지원 등이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하며
앞에서 보여주었듯이 스포츠과학 역시 튼튼한 버팀목으로서 선수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이제 올림픽은 선수들만의 경쟁이 아니라 선수를 매개로 하는 각국의
스포츠 첨단과학의 경쟁이기도 하다.
따라서 역도종목에서 확연히 보았듯이 스포츠과학의 발전과 현장에서의 접목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의 지원 및 지지노력,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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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종세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마라톤 스타들
, 세계선수권대회 외면 경향도

지난 8월24일 베를린에서 막 내린 제12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육상의 꽃’인 마라톤에서 두 가지의 뚜렷한 변화가 감지됐다.

우선 8월의 무더위 때문에 그동안 순위경쟁을 펼쳤던 남자 마라톤이 이젠 기록경쟁으로 바뀌었다.
또 하나는 세계 최고의 마라톤 스타가 ‘기록의 산실’인 9월의 베를린국제마라톤 참가를 위해
세계 정상을 가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잇달아 외면한 점이다.

이 같은 변화는 작년 8월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1년 만에 다시 나타난 것으로
국제마라톤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평가다.

한 여름 레이스에서도 2시간 6분대 기록 속출...종전엔 2시간 8,9분대

8월 22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 순환코스(10km 코스를 네 바퀴 돔)에서 벌어진
제12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마라톤은 2시간 6분 54초의 대회 최고기록을 작성한
케냐의 아벨 키루이가 우승했다.
또 37km 지점까지 키루이와 함께 뛴 팀 동료 엠마누엘 무타이(케냐)가 대회 최고기록인
2시간 7분 48초로 2위에 올랐다.

키루이와 무타이의 대회 최고기록은 2003년 제9회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모로코의 자우드 가립이 세운 2시간 8분 31초를 6년 만에 경신한 것으로,
키루이는 1분 37초, 무타이는 43초를 각각 단축했다.

1983년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제1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헬싱키에서 개최한 이래
이 대회는 1991년까지 4년마다 한 번씩 열어오다 1993년 대회부터 2년에 한번 씩 개최,
올해 12회를 맞았는데 개최시기는 가장 무더운 8월이 대부분이었다.

    왼쪽에서 부터 아벨 키루이(케냐),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에티오피아), 사무엘 완지루(케냐
                                                                                             미지출처<연합뉴스>

종전엔 기록경쟁 엄두 못내... 베이징올림픽부터 스피드 경쟁 불붙어


이 때문에 개최지 기온에 매우 민감한 마라톤은 기록경쟁보다는 순위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 2시간 5, 6분대를 겨냥해 달리다가는
쉽게 지쳐 중도 포기가 불가피하기 때문. 따라서 선두 그룹의 레이서들은 곁눈질로 경쟁자들의
스피드와 컨디션을 살펴가며 힘을 최대한 아꼈다가 40km 지점 이후의 막판에 승부수를 걸어왔다.

1991년 제3회 도쿄 세계육상선수권 남자마라톤에서 조국에 세계육상선수권 첫 금메달을 바친
일본의 ‘국민 마라토너’ 다니구치 히로미(谷口浩美)도 폭염을 이기지 못해 순위경쟁을 벌이다
2시간 14분 57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맨 먼저 통과, 일본 열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다니구치의 우승기록은 올 대회 우승자 키루이의 기록에 비해 8분 03초가 뒤지는 것으로
거리로 따지면 2.4km나 된다.

혹서기 레이스에서 2시간 6분대의 기록이 처음 나온 것은 작년 8월 24일 베이징 올림픽 남자마라톤.
당시 케냐의 사무엘 완지루가 예상을 깨고 2시간 6분 32초의 기록으로 우승한 것.
완지루의 기록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포르투갈의 카를로스 로페스가 수립한
2시간 9분 21초의 대회 최고기록을 24년 만에 2분 49초 앞당겨 마라톤 전문가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때문에 그 동안 ‘봄, 가을의 국제마라톤에서는 기록경쟁,
한여름의 세계선수권대회나 올림픽에서는 순위경쟁’이라는
마라톤 레이스의 개념이 바뀌고 있어 이에 대한 한국마라톤의 대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게브르셀라시에 작년부터 올림픽, 세계선수권 외면... 대회권위 흠집

한편 200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매년 9월 하순에 열리는 베를린 국제마라톤에서
세계최고기록 경신을 노리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참가를 외면, 대회 권위에 흠집을 남겼다.

작년 2008 베를린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3분 59초의 세계기록을 세웠던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는 2009 베를린국제마라톤에서
자신의 세계기록 경신을 위해 2009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 출전을 포기했다.

게브르셀라시에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마라톤에도
“베이징의 공기 오염 때문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1개월 뒤 열릴
베를린국제마라톤을 의식해 올림픽 참가를 거부한 것.
베이징올림픽은 혹서 때문에 기록경신이 어려운데다 베이징 올림픽을 뛸 경우
체력 회복을 위해 적어도 3개월은 쉬어야하기 때문.
여기에 베를린국제마라톤 조직위가 지급하는 막대한 참가비와 우승상금 역시 놓치기 아까운 호재.

작년 올림픽 우승자 완지루도 올 세계선수권대회 참가 외면

이 여파는 작년 베이징올림픽에서 2시간 6분 32초의 놀라운 기록으로 우승한
완지루에게도 미쳐 완지루의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마라톤 출전을 포기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마라톤 세계 기록보유자인 게브르셀라시에가 베를린 국제마라톤 참가를 겨냥,
작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도 불참하자
완지루도 올 세계선수권대회 대신 9월20일의 베를린국제마라톤에 나가기로 한 것.

세계마라톤 기록의 산실인 베를린 국제마라톤은 9월 20일 세계최고기록 보유자인
게브르셀라시에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우승자인 완지루가 ‘세기의 대결’을 펼치게 됐지만
세계최고의 권위를 지켜온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마라톤은 그 위상이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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