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문화'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3/05 엘리트스포츠는 생활체육의 적인가? (2)
  2. 2009/10/07 학교체육, 그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2)


                                                                                           글 / 김정효 (신도봉중학교 교사) 

김연아의 환상적인 ‘점프’에서 우리는 인간의 신체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전율한다.
마지막 동작이 멈춘 후 클로즈업되는 그녀의 도발적인 표정은 마치 예술과 스포츠의 경계를
되묻는 듯 하지 않는가. 혹자는 시상식의 태극기를 바라보며 더불어 게양되는 대한민국의
위상에 가슴 뿌듯해 하기도 한다. 어느새 김연아는 꿈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온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전령사는 그녀뿐이 아니다. 박지성과 장미란, 태극기를
가슴에 달았던 베이징올림픽의 야구선수들도 모두 그녀에 버금가는 희망의 전령사들이었다.
이들을 흔히 우리는 ‘엘리트스포츠 선수’라 부른다. 그리고 미디어는 시청자들을 흥분시킨
그들의 공적을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한다. 그들이 국민에게 안겨준 꿈과 희망의 질량을
계산하면 이러한 찬사는 수사학적 미사여구나 언론의 자극적 선동을 뛰어넘는다. 

 
그러나 막상 그들을 길러낸 우리 사회의 스포츠인프라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주저하거나
얼버무린다. 말하기는 한다. WBC의 준우승 이후 돔구장의 부재가 마치 우승을 놓친 결정적인
이유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는 했다. 왜 김연아의 우승에는 열광하면서 제2의 김연아를
만들어 낼 물적 토대와 정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걸까. 차라리 후진적 환경을 적당히
방치함으로써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승리의 시나리오를 즐기는데 우리는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혹자는 말한다. 우리나라의 스포츠정책이 너무 엘리트스포츠에
편중되어 있다고. 이제 체육정책의 방향은 엘리트스포츠라는 편협한 민족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 모두가 즐기는 생활체육, 혹은 사회체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그들의 따끔한 질책과 비판에는 충분히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엘리트스포츠가 생활
체육과는 전혀 다른 원리적 토대를 가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 물론 국가에
의한 스포츠의 이데올로기적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할 경우 엘리트스포츠는 한국 사회만의
독특한 스포츠문화로서 그 한계를 가진다.

박태환의 금메달이 잠시 국민을 흥분시키는 국가적 오락이거나 실체 없는 민족주의의 허상일
수 있다. 하지만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김연아와 박태환, 박지성 개인을 묻는 것이 아니다. 가령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양정모가 당시 체제 이데올로기의 선전에 커다란
몫을 한 것과는 별개로 그의 메달은 한국의 레슬링 문화의 중요한 성과이며 그 후 비약적인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해 왔다. 요컨대 스포츠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유효기간을 갖는
일시적이고 한정적인 것이나 그 문화적 내용은 역사적이고 또한 현재적이다.

스포츠는 문화의 형태로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문화 외적인 것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만큼 파급력이 크다는 사실에서 비롯할 뿐이다. 자연인이 아닌 스포츠 선수로서의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을 위해 존재한다. 그녀의 신체능력은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운동문화를 매개로
극한까지 펼쳐지며 이를 통해 피겨스케이팅은 보다 진일보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우사인
볼트의 개인적인 신체능력에 의해 100m의 기록이 갱신되듯이.

엘리트스포츠가 생활체육과 준별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엘리트스포츠가 이미 존재하는
운동문화, 즉 개별 스포츠 종목에 참여하는 개인의 뛰어난 신체능력을 통해 보다 발전된
운동문화로 전승되는 과정이라면, 생활체육은 한 개인의 신체능력이 특정 스포츠 종목을
행함으로써 보다 발전된 신체능력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말한다.

이를 알기 쉽게 설명하면 마라톤이 생활체육에서는 심폐지구력과 체중감량 등의 개인적
신체능력의 향상을 목표로 하지만 그것이 엘리트스포츠로 전환하면 마라톤 자체의 질적 변화
즉 새로운 기록 작성이 목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엘리트스포츠와 생활체육은 각기 문화적
위상을 달리 한다. 엘리트스포츠가 해당 스포츠의 질적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면 생활체육은
그 양적 변화와 깊은 연관을 갖는다. 이런 까닭에 생활체육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엘리트
스포츠의 발전을 담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엘리트스포츠에서 필수적인 고도의 신체능력은
전문성과 체계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배드민턴 동호회의 양적 팽창과 ‘이용대’라는 걸출한
엘리트 선수의 배출 사이에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생활체육의 저 발전을 엘리트스포츠의 비대화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그 둘을 동시에
끌어 올리는 정책과 인식의 전환이다. 엘리트스포츠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생활체육의 질을
견인한다. 아니 견인하여야 한다. 은퇴 후의 김연아와 박태환이, 혹은 그들을 롤 모델로 삼았던
엘리트 선수 출신들이 어린이와 직장인을 대상으로 피겨스케이팅과 수영을 가르치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엘리트스포츠는 생활체육의 적이 아니라 희망이 되어야 한다. 다만 그 피드백의 고리를
어떻게만들 것인가가 향후의 과제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엘리트스포츠에 더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하지 않을까?

ⓒ 스포츠둥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스포츠둥지

                                                                             글 / 최의창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교수)

학교체육에의 요구

학교체육이 갖는 신체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는 통상적으로 학교체육의 철학을 '신체의 교육'과 '신체를 통한 교육'의 두 방향에서 바라보도록 하였다. 전자는 신체적 가치를, 후자는 정신적 가치를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이 두 철학은 신체적, 정신적 가치를 모두 추구하지만, 주와 종, 선과 후가 무엇이냐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이다. 학교체육의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이 두 철학의 사이를 오고가며 운동을 반복해왔다.

한 때는 신체적 가치를, 한 때는 정신적 가치를 더욱 강조하면서 지난 동안을 보내왔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신체를 통한 교육으로서의 체육이 강조되면서 전인교육의 통로로서 학교체육의 중요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부각시켜 왔지만, 가장 최근에는 사회가 변하고, 생활이 변하고, 모든 것이 급격히 바뀌게 되면서, 학교체육에 대한 변화의 요구가 급격히 번지고 있다.

활동적 생활스타일

최근 들어 가장 강력하게 요청되는 것은 학교체육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건강과 활기찬 삶을 위한 준비기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학계와 운동생리학 전문가들은 성인으로서의 삶이 의미있고 건강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생활의 스타일이 신체활동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이끌어내야 한다고 한다. '활발한 생활방식'(active lifestyle)의 습관을 몸에 익히도록 해주어야 하고, 또한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은 바로 학령기라는 것이다.
 
최근의 이론에 따르면 활발한 생활방식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체력(physical fitness)보다는 활동(physical activity)이 더 근본적인 중요성을 갖는다고 한다. 그래서 근력과 지구력을 위한 엑서사이즈만이 강조되던 방식에서 벗어나, 일상생활 속에서 다양한 신체활동을 충분한 강도로 활달하게 지속적으로 행해주는 기초습관과 기술을 키워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요구는 “신체의 교육” 철학의 가장 최근 버전이 분명하다. 신체적인 측면(이전에는 체력이었으나 지금은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학교체육에서 집중적으로 길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포츠 문화에의 입문

다른 한편으로, '신체를 통한 교육' 부류에 속하는 최근 주장도 당연히 있다. 이것은 학생들을
스포츠문화에 올바로 입문시키는 기회로 학교체육의 지향점을 삼는 것이다. 스포츠문화에의
입문이란 복합적인 의미가 들어있다. 스포츠문화는 스포츠라는 게임 활동이 만들어내는 직접적,
간접적 문화현상들을 모두 포함하여 말한다.

스포츠 게임만이 아니라 스포츠를 내용으로 하는 패션, 디자인, 영화, 음악, 미술, 건축, 문학, 종교 등
모든 문화 활동과 현상들을 총망라한다. 예를 들어, 축구에 입문한다는 것은, 축구게임 자체만을
잘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축구에 관련된 영화, 음악, 건축, 문학, 미술, 패션 등의 모든 문화
활동들을 다양하게 체험해봄으로써 축구를 입체적,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문화로서의 스포츠 활동을 체험하고 그것에 입문해야하는 이유는 총체적으로 스포츠를 체험하는
것이야 말로 스포츠를 제대로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운동기능을 숙달하고 게임만을
잘 하는 것으로는 스포츠를 부분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며, 제대로 아는 것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좋은
효과들을 모두 얻지 못하게 되는 부작용이 생긴다. 단순 게임 활동이 아닌 문화로서의 스포츠
활동에 입문하게 되면, 그 사람(학생)은 문화 활동 속에 담긴 좋은 것들을 습득하게 되며 그를
통하여 참 좋은 사람(전인, whole person)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인 Alasdair McIntyre는 인간의 활동 가운데 '실천전통'(a practice)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류의 것들이 있으며, 이 실천 활동들은 그 안에 내재된 가치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실천전통에 입문하는 것이 교육의 주된 목적이고, 입문한다는 것은 바로 그 내재된 가치들을
몸과 마음속에 체득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실천전통에 속하는 한 가지가 바로 스포츠 활동이며,
실천전통의 가장 가까운 형태로 우리 앞에 주어진 스포츠의 모습이 바로 문화 활동으로서의
스포츠인 것이다. 게임시합은 실천전통의 편린에 불과하다.

현대사회에서의 학교체육의 가치

현대사회 속에서 교육의 기회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온라인 교육이 일반화되고 대안 교육적
방안도 많고, 사회교육기관도 무수하며 학원도 부지기수이다. 배울 수 있는 통로가 무척이나
다변화되었다. 학교가 모든 학습의 최고 원천 역할을 하던 이전 시대와는 완전히 달라졌으며,
이런 상황 속에서 학교교육에 대한 기대는 점차로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학교체육의 현실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학교 안에서 제공되는 체육의 양과 질은 학교 밖에서
체험할 수 있는 체육의 양과 질에 비해서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한정된 시간에 별로 흥미 없는 내용을 가지고
무서운 선생님이 가르치는 체육수업을 좋아할 학생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반면, 체육관이나 스포츠센터에서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다정한 강사선생님이 즐겁게 가르쳐주는
생활체육 활동은 너무도 하고 싶어진다.
 
학교체육은 사회의 변화, 생활스타일의 변화, 학생특성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그러한 변화는 물론 활발한 생활방식의 습관화를 위하는 것으로 초점이 잡혀야 할 것이다.
기존의 체력 단련과 기능훈련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방식, 즉 “신체의 교육”의 고전적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신체의 교육의 중요한 측면을 받아들여야만 하며,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맞도록 그 측면을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 학교체육은 스포츠문화에의 입문이라는 시대의 요구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스포츠 문화에의 올바른 입문을 통하여 보다 나은 사람, 보다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발견과 자아실현을 위한 중요한 매개체로서 학교체육의 역할을
강화시켜야 한다. 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때, 학교체육은 교과의 하나로서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학생을 전인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교육의 주요 목적이라고 할 때, 체육교과는
신체활동을 통하여 그 일을 하는 교과이다. 그럼으로써 “신체를 통한 교육”으로서의 학교체육의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게 된다.

두 가치의 통합적 성취

지금 우리의 학교체육은 이 두 가지 어려운 일을 모두 해내야만 되는 힘겨운 상황에 놓여져 있다.
신체의 교육과 신체를 통한 교육, 이 두 지향점 모두를 성취해내야 하는 험난한 지경에 처해 있지만,
사실 이런 어려운 지경에 있었던 것이 이번만은 아니다.

가만히 되돌아보면, 학교체육은 기원전부터 바로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실현해내야만 하는
어려운 일을 도맡았다. 때로는 성공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또 다시, 이 일을 명백히 해내야만 하는 그러한 시점에 와있다.
현대사회에서 학교체육이 당면하고 있는 분명한 당면과제이다. 활발한 생활방식과 스포츠문화에의
입문, 신체의 교육과 신체를 통한 교육, 이런 두 가지 학교체육의 가치를 통합적으로 성취해내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내길 기대해본다.

                                                                                                                            ⓒ 스포츠둥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