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윤영 (고려대학교 박사/NCAA 인턴)

1905년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학 풋볼경기의 규칙을 정립하고 학생으로서의 권리와 운동선수로서의 권리를 동시에 보장하라는 명목으로1906년 미국대학경기협회(inter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 of the United States)를 제안했다. 그리고 이 미국대학경기협회가 오늘날 미국대학농구경기인 파이널포(Final Four)로 유명한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National College Athletic Association)’의 전신이 되었다. 현재 NCAA는23개 종목에 걸쳐 88개의 챔피언쉽을 주관하며 3십8만명이 이르는 학생운동선수(student-athletes)를 관리하는 명실상부 미국 최대 스포츠 기구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특히 64개 대학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경기를 치르고 최종 4개 팀이 결승전 시리즈인 파이널포에 진출하는 미국대학남자농구경기는 ‘3월의 광란’이라고 불리며, 이 ‘단일종목’의 중계료(CBS 중계)만해도 2002/3-2012/3년까지 총 6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할만하다.

NCAA의 경기가 미국 전역을 흔들만큼 인기를 모으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학생운동선수로 이뤄진 경기에서만 볼 수 있는 순수함과 열정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풋볼리그(NFL), 메이저리그(MBL)등 프로스포츠가 지배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유독 NCAA의 농구경기에 방송사들은 가장 비싼 중계료를 내고 있으며 매년 NCAA 소속 선수들에게 미국인들은 아낌없는 격려를 보낸다. 자본주의 첨병을 걷고 있는 미국에서 어떻게 프로리그를 물리치고 대학경기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까. 바로 ’학생운동선수’를 철저히 보호하고 관리하며 순수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하는 스포츠정신과 학생으로서의 기본권리인 학업성취를 균형있게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NCAA가 있기에 가능했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지금부터 보다 구체적으로 NCAA표방하고 있는 가치(Core Values)를 통해 미국대학스포츠협회의 역할, 그리고 어떻게 NCAA가 학생선수의 순수아마추어리즘과 스포츠정신을 유지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표1>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NCAA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어떻게 학생으로서의 권리를 지키면서도 최상의 운동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운동선수이기 때문에 소홀해질 수 있는 학생으로서의 권리, 사회적 경험을 함께 보장하면서도 운동선수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시스템의 유지 및 적극적인 지원이다.

                                          
                                                 <표1> NCAA의 핵심가치(Core values)

1. 학업, 사회적 경험, 운동수행의 균형있는 유지
2. 최상의 스포츠맨쉽과 순수함의 지향
3. 학업적, 운동성취의 추구
4. 높은수준의 교육과 운동수행을 유지하기 위한 대학간경기 지원
5. 학생선수, 코치, 스포츠행정가를 위한 공정한 기회 제공
6. 자율성과 관념의 차이 존중
7. 대학간경기의 선두적인 리더쉽 추구


이를 위하여 NCAA에 소속되고 경기에 참여하기 위한 최소한의 학업규정을 정해놓고 이를 철저히 감시하고 있으며, 만약 이 최소한의 규정을 채우지 못할 경우 경기 참가 자체를 엄격히 규제하는 강력한 정책을 쓰고 있다. 예를 들어 <표2>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미국대학경기의 디비전1리그에 소속되어 경기에 선수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재학기간(미국 학재의9학년부터 12학년까지) 중 4년간의 영어수업, 3년간의 수학 수업 등 필수적으로 16개의 과목을 이수해야 하며 디비전2의 선수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14개의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그리고 NCAA의 ‘자격센터(Eligibility center)’에서는 선수들의 학업이수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감독하고 있으며, 만약 이를 지키지 못한 학생선수는 대학입학후 NCAA경기 등록 및 활동이 불가능하다. 또한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미국의 SAT점수의 경우도 반드시 NCAA의 자격센터에 보고해야 하며 최소한의 SAT 점수를 넘어야만 선수로 활약이 가능하다. 따라서 대학들은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고 하더라도 학업능력이 떨어지는 경우는 경기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스카웃 자체를 하지 않는다.


                                                        <표 2> 필수 이수 과목

디비전 1 선수로 등록하기 위해 이수해야 할 필수 과목  디비전 2 선수로 등록하기 위해 이수해야 할 필수과목
                            영어/ 4년
                            수학/3년
                     자연,물리 과학/2년
      추가적인 영어, 수학 또는 자연.물리과학/1년
                         사회과학/2년
        기타 과목(외국어, 종교, 철학 등)/4년 
                              영어/ 3년
                              수학/2년
                       자연,물리 과학/2년
      추가적인 영어, 수학 또는 자연.물리과학/2년
                          사회과학/2년
             기타 과목(외국어, 종교, 철학 등)/3년



또한 학업적 성취와 더불어 순수아마추어리즘을 지키기 위한 정책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NCAA의 디비전1,2에 등록된 모든 선수는 반드시 아마추어리즘에 관한 시험(amateurism questionnaire)’을 치뤄야 하며 선수들은 개인적으로 기업이나 다른 단체로부터 일체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이와 같은 모든 선수 자격및 기준에 대해서는 NCAA의 실행부서(Enforcement)에서 관리 감독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NCAA의 기준이나 학생선수 자격에 대하여 미래의 운동선수를 희망하는 초등학생들에게 끊임없이 홍보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학업과 운동을 병행해온 대학 학생선수들의 100여년의 발자취를 응집해 놓은 NCAA 산하의 미국대학스포츠박물관(Hall of Champions)에서는 운동선수를 희망하는 10대초반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박물관 투어 및 학생선수의 자격에 대한 홍보가 끊이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이와 같은 NCAA의 적극적인 홍보와 철저한 관리, 지원 시스템이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운동선수를 가능하게 했으며, 학생으로서의 권리와 운동선수로서의 권리를 ‘학생선수’라는 이름으로 특별히 보장받고 있는 NCAA 소속 구성원의 자부심을 빛나게 하는 원천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00여년간 학생선수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해온 NCAA의 존재는 여전히 학생으로서의 권리와 운동선수로서의 권리를 위태롭게 유지해가고 있는 한국의 스포츠정책에 함의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디비전: NCAA 소속의 대학은 학교의 스포츠 시설, 운동부의 규모에 따라 디비전1, 디비전2, 디비전3으로 구분된다. 디비전1은 남녀 각각 7개의 운동부를 갖추고 있어야 하며 디비전2의 경우 남녀 각각 5개 이상의 운동부가 있어야 하고 디비전 3은 남녀 각각 3개 이상의 팀이 있어야 한다. 디비전1에는 335개 학교, 디비전2에는 288개 학교, 디비전 3에는 432개 학교가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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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김영갑(동양대학교 생활체육학과)

한국 스포츠문화의 중요한 해석적 틀은 학교체육, 대중스포츠, 엘리트스포츠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학교체육과 엘리트스포츠는 태생적 한계에 따른 의식부재로 외부변화에 둔감하다. 근현대사의 공포정치 기간 동안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체육정책이 수립되어 시행다보니 선진화의 속도가 더디다. 양축은 문민정부 이후 체육정책의 탈권위적인 발상을 기대하였으나 아직까지도 일관성이 결여된 채 유지되고 있다. 오히려 사회통합이라는 명분아래 엘리트스포츠는 강화되고 있으나 학교체육은 교육정책에서 더욱 주변화 되었다. 경제변동에 의한 스포츠문화의 외형적 프레임이 확장되었음에도 스포츠문화의 중핵구조인 학교체육은 오히려 소외되는 역설의 시대인 것이다.
 
더 이상 학교체육을 방치할 수 없다는 내부의 반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개진되어 왔다. 결핍된 학교체육에 관한 내부의 성찰과 비판만으로는 현실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음도 지각하게 되었다. 동조세력의 결집이 필요한 시기에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통한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음은 이전보다 희망적이다. 최근 학교체육 비판의 주체가 안과 밖의 만남으로 확장되면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학교체육 개혁을 염원하는 학자로부터 방송사, 언론기관, NGO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사회적 결집이 형성되고 있다. 대표적인 소통의 결과가 학생운동선수의 인권침해 문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최근 체육계의 인권침해 문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주도할 정도로 사회적 의제로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한걸음 내단 실천과제가 학교체육법의 제정이다. 학교체육을 개혁하기 위한 노력이 다양한 공청회를 거쳐 안민석 의원에 의해 발의되었으나 2010년 3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었다. 일부 학원스포츠 종목에서 공부하는 선수를 지향하기 위해 주말리그제를 시행하여 타 종목으로 확산되려는 상황과 학교체육법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지향하는 학원스포츠의 방향과 내용과도 일정부분 일치함에도 부결되었다는 것은 아쉬움이 크다. 따라서 한국 스포츠문화의 구조적 프레임 간의 연계성이 불안정하다는 점에서 스포츠문화의 대전환은 학교체육법의 제정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학교체육법의 논쟁거리

학교체육법 표결에 있어 반대의견을 제시했던 박영아 의원은 내용의 절반이상을 법 심의과정이 부실하다는 절차상의 문제에 집중하였고, ‘엘리트스포츠의 축소 위험, 특정과목 진흥을 위한 개별 법률의 필요성 의심, 구체적인 재원 확보 방안의 미비’ 등에 원론적인 내용만을 주장하였다. 학교체육법 반대논리는 이미 2010년 3월 15일자 남상우 박사의 칼럼에서도 확인된다. 중요한 두 가지 주장에 집중하여 반대논리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첫째, 학교체육법: 특정과목만을 위한 개별 법률이 필요한가?

박영아 의원은 전인교육이라는 목표에서 보자면 모두 중요 교과목들이기 때문에 학교체육법의 형평성과 균형 감각이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미 교육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심각한 격차가 존재한다. 대학입시에서 단위 배점이 높은 국·영·수 교과목만 중요시되고 비입시과목은 뒷전인 게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이다. 최근 역사인식의 부재를 개선하기 위해 국사과목을 필수로 전환시키기 위한 ‘역사교육 의무화법안’이 여야 의원 17명에 의해 공동 발의한 상태다. 또한 올해 2월 18일 ‘태권도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이하 태권도진흥법)’ 개정안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국회 본회를 통과했다. 역사교육 의무화법안은 역사인식의 심각한 문제점이 도출된 반작용이며, 태권도진흥법은 민족문화의 고유자산인 태권도를 통해 한국적 가치와 위상을 전파하기 위한 노력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학교체육법의 제정도 마찬가지다. 학교체육의 결핍이 더욱 심각하게 진행될 경우 투입될 사회적 건강비용이 증가하여 다양한 사회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복지적 차원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학교체육은 특정과목이라는 편견으로 바라보기보다 국민의 건강양극화를 좁혀 건강한 사회를 조성하는 밑거름이라는 필요성을 인식해야 된다. 따라서 학교체육법 제정이 특정과목 진흥을 위한 개별 법률로 이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인 것이다.

둘째, 엘리트스포츠의 몰락

학교체육법 부결에 대한 안민석 의원의 보도자료를 보면 학교체육법은 두 가지의 내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즉 학생선수들에게 최소한의 학업을 요구하는 최저학력제 실시(A)와 일반학생들의 체력증진을 위한 학교스포츠클럽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지원(B)에 관한 것이다. A의 내용은 학생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합숙훈련을 금하고, 훈련도 방과 후와 주말에만 하게하며 일정학력 수준에 미달하는 선수는 대회출전을 제한하는 것으로 의미가 확대된다. 특히 A와 관련해 박영아 의원은 체육계의 우려와 염려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며 엘리트스포츠의 장점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학교체육법이 부결되어야 됨을 호소하였다. 체육계의 근심이 크다는 주장만 있고, 이에 대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일부 엘리트스포츠 추종자들의 주장을 마치 체육계 전체의 입장인 것처럼 대변한 것에 불과하다. 운동과 학업은 학생의 몫이며 오히려 국제스포츠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운동시간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학교체육법이 시대를 역행하는 법안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체육학계에서는 엘리트스포츠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개진되어 왔다. 주로 제시되었던 방향의 하나가 학생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이다. 최저학력제의 실시는 고사된 학생선수의 학습권 보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마련된 조치인 것이다. 학습권은 학생으로서 교육받을 권리이며 넓게는 인간답게 살아갈 기본권으로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그동안 국가와 엘리트스포츠 추종자들이 만든 프로젝트로 성공한 운동선수 1%만 존재해왔고, 국민들도 그들만 기억하며 즐거워했다. 그렇다면 99%의 낙오자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현실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학생선수의 인권문제를 무시한 채 엘리트스포츠의 투자에만 집중한다면 현재의 스포츠력(sports power)을 유지하면서 국민들에게 일시적 감동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한 사회통합적 효과도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국격 제고와 선진화를 모색하는 현실에서 엘리트스포츠의 미래는 반드시 선진국처럼 건강한 학교체육에 기반을 두어야 할 것이다.


사회복지의 관점에서 학교체육법

경쟁과 수월성이 강조되는 이 시대의 교육현실은 교육격차에 따른 계층격차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교육인사부패, 일제고사 부활, 국제중과 자율형 사립고 설립, 입시사교육 열풍 등이 주요한 교육 부조리 현상으로 진단된다. 신자유주의식 교육정책이 수립되어 시행되다보니 공교육은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교육은 시장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따라서 지금의 교육정책은 시장의 경쟁을 조정해주는 사회복지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필요가 있다. 교육 불평등으로 폐쇄된 사회이동성(closed social mobility)을 우려하는 현실에서 공교육은 실질적인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방향성 설정이 중요한 과제이다. 2009년 한국개발연구원(KDI) 김희삼 박사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종전에는 교육을 통해 부의 대물림이 상쇄되어 불평등 구조를 완화해왔지만 이제는 오히려 교육으로 부의 대물림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경제력과 교육력(educational power)에 의한 불평등한 사회의 방치는 사회전체의 신뢰도, 교육성취도, 건강수준을 하락시켜 다양한 사회문제를 노출시킬 수 있다. 지금의 교육현실에서 학교체육의 위기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학교체육을 선진화시키려는 노력인 학교체육법의 제정은 사회전체의 건강욕구 충족과 삶의 질 향상에 직결되므로 사회복지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비뚤어진 학교체육의 현실을 직시하고 ‘공부하는 선수, 운동하는 학생’을 지향하는 학교체육법은 더 높은 차원의 평등과 사회정의를 추구하려는 비경제적 보장의 사회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스포츠문화의 위대한 전환 : 학교체육법 제정

‘위대한 전환(great transition)’은 미국의 텔어스연구소가 2002년 발간한 미래예측보고서의 제목에서 인용한 것이다. 2015년 지구촌에 대위기가 올 것임을 전망하면서 대변환을 통해 부활의 긍정적 시나리오를 모색해야 함을 경고한다. 칼 폴라니의 저서인 ‘거대한 전환’도 같은 맥락으로써 다가올 경제위기에 다양한 사회문제가 발생됨으로 현재부터 미래를 극복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스포츠문화의 위대한 전환도 인식과 제도의 대전환을 통해 균형을 유지하자는 의미이다. 참된 스포츠문화의 조성은 학교체육의 선진화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따라서 학교체육의 현실성을 반성한 학교체육법의 제정은 미래 스포츠문화를 염려하는 현재의 실천적 노력인 것이다. 대통령의 선진화 선언이 경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특히 경제정책은 교육, 노동, 복지 등 유사분야의 정책이 수반되어야만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학교체육법 제정도 교육의 영역에서 선진화 논리의 한 지류인 것이다. 비정상적인 학교체육의 전반적인 문제를 제도화시키겠다는 의지가 정책으로 구체화되고 실현될 때 건강한 미래 스포츠문화의 틀이 확립될 것이다. 이를 위해선 스포츠문화의 위대한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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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임수원 (경북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 

 “도서관에 가서 책 3권을 빌려서 읽었어요. 공부하려고 책을 빌린 것은 아마 태어나서 처음일걸요
” Y대학교 농구부 센터 전00(사회체육과 2학년)은 “서양문화와 봉건제도”라는 주제로 A4용지 3장
짜리 보고서를 쓰느라 1주일을 끙끙됐다. 그는 “뭘 해야 할지 막막해 과목 조교한테 문자메시지로
질문을 보내고, 전화도 여러 번 했다”면서 “운동부가 공부 때문에 질문을 하니까 조교가 신기해
하더라”고 말했다(KBS 시사기획 쌈, 2007).

위의 진술내용은 학원엘리트 스포츠가 안고 있는 그릇된 현실을 집중 조명하여 ‘죄송합니다, 운동부
입니다’ 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의 일부 내용이다. 이것은 여태껏 우리 사회가 학생
선수를 단지 운동만 하는 학생으로 편협하게 바라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도포기 대학선수들이 학업과 관련하여 처해있는 실정을 우리사회의 주 문화와 하위문화의 관계
에서 의미 있게 설명해 볼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주 문화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여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도록 주문한다. 스포츠
하위문화에서도 운동선수들에게 주 문화와 방향은 같으나 그 방식에서 공부가 아닌 운동을 열심히
해서 성공을 하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관계에서 보면 운동을 하여 크게 성공 하거나 프로 팀이나
실업 팀으로 진출하는 선수들의 경우 성공에 이르는 방식은 다르더라도 그나마 주 문화가 요구하는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학에서 운동을 그만두게 되는 중도탈락 선수들의 경우 오랜 선수생활로 인해 기초학력이
크게 부족하기에 주 문화가 요구하는 성공 방식을 갖추고 그것을 실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너무나
어렵다. 중도탈락자들은 자신의 진로를 운동이 아닌 학업능력에 의해 결정하고 성취해야 하기에
많은 갈등과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중도탈락자가 아니더라도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계속 운동을 한 선수들의 경우에도 프로팀이나
실업팀으로 진출을 하지 못하면 운동으로 졸업을 했다손 치더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대학선수들의 프로진출 비율이 매우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졸업한 많은 선수들이 진로와
관련하여 비슷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특히 대학에서 운동을 하다가 군복무나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운동을 그만 두게 되는 중도탈락자들은 자신의 진로와 관련하여 많은 고민과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 이들이 갈등을 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기초학력 부재이다.
운동선수로 대학을 진학한 이들은 기초학력 수준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에 대부분이 학점을
취득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은 대학 졸업장을 받지만 우리 사회의 주 문화에서 요구하는
성공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에 직업세계로의 진출에 큰 장애요인이 된다. 여기서의
대학졸업장은 겉치레에 불과하고, 무의미하다.

 
그러면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초등학교 선수에서부터
중․고등학교, 나아가서는 대학선수에 이르기까지 ‘공부하는 선수상’을 정립하여 실행해야 할 것이다.
이들이 대학에서 선수생활을 계속하든 중도에 탈락을 하든 최저학력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의 주 문화가 요구하는 기초학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기초학력을 갖추고 있다면 프로에 진출하지 못한 선수이건 중도탈락한 선수이건 자신이 원하는
분야로 진로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며 진로에 대한 갈등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초학력
수준만 갖추어져 있다면 프로에서 은퇴하는 선수들도 제2의 진로를 모색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스포츠에서 중도탈락 하여 대학을 졸업하였든 아니면 대학선수로 졸업장을 취득한 경우든
학생으로서의 기본적 소양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그 졸업장은 자신의 진로를 모색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은퇴이후의 긴 삶을 보장해 줄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가시적인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기본적 소양을 갖춘 학력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최근 Y대학교 농구부의 ‘공부하는 운동선수 만들기’프로젝트는 한국 대학
스포츠 변혁의 선두주자로서 ‘대학이 바뀌면 중․고등학교가 따라올 것이고, 결국 한국 학원 엘리트
스포츠가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라는 철학이 담겨있다. 뿐 만 아니라 이 프로젝트는 한국 학원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의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변화 모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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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김정효 (신도봉중학교 교사) 

김연아의 환상적인 ‘점프’에서 우리는 인간의 신체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전율한다.
마지막 동작이 멈춘 후 클로즈업되는 그녀의 도발적인 표정은 마치 예술과 스포츠의 경계를
되묻는 듯 하지 않는가. 혹자는 시상식의 태극기를 바라보며 더불어 게양되는 대한민국의
위상에 가슴 뿌듯해 하기도 한다. 어느새 김연아는 꿈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온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전령사는 그녀뿐이 아니다. 박지성과 장미란, 태극기를
가슴에 달았던 베이징올림픽의 야구선수들도 모두 그녀에 버금가는 희망의 전령사들이었다.
이들을 흔히 우리는 ‘엘리트스포츠 선수’라 부른다. 그리고 미디어는 시청자들을 흥분시킨
그들의 공적을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한다. 그들이 국민에게 안겨준 꿈과 희망의 질량을
계산하면 이러한 찬사는 수사학적 미사여구나 언론의 자극적 선동을 뛰어넘는다. 

 
그러나 막상 그들을 길러낸 우리 사회의 스포츠인프라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주저하거나
얼버무린다. 말하기는 한다. WBC의 준우승 이후 돔구장의 부재가 마치 우승을 놓친 결정적인
이유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는 했다. 왜 김연아의 우승에는 열광하면서 제2의 김연아를
만들어 낼 물적 토대와 정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걸까. 차라리 후진적 환경을 적당히
방치함으로써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승리의 시나리오를 즐기는데 우리는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혹자는 말한다. 우리나라의 스포츠정책이 너무 엘리트스포츠에
편중되어 있다고. 이제 체육정책의 방향은 엘리트스포츠라는 편협한 민족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 모두가 즐기는 생활체육, 혹은 사회체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그들의 따끔한 질책과 비판에는 충분히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엘리트스포츠가 생활
체육과는 전혀 다른 원리적 토대를 가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 물론 국가에
의한 스포츠의 이데올로기적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할 경우 엘리트스포츠는 한국 사회만의
독특한 스포츠문화로서 그 한계를 가진다.

박태환의 금메달이 잠시 국민을 흥분시키는 국가적 오락이거나 실체 없는 민족주의의 허상일
수 있다. 하지만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김연아와 박태환, 박지성 개인을 묻는 것이 아니다. 가령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양정모가 당시 체제 이데올로기의 선전에 커다란
몫을 한 것과는 별개로 그의 메달은 한국의 레슬링 문화의 중요한 성과이며 그 후 비약적인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해 왔다. 요컨대 스포츠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유효기간을 갖는
일시적이고 한정적인 것이나 그 문화적 내용은 역사적이고 또한 현재적이다.

스포츠는 문화의 형태로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문화 외적인 것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만큼 파급력이 크다는 사실에서 비롯할 뿐이다. 자연인이 아닌 스포츠 선수로서의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을 위해 존재한다. 그녀의 신체능력은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운동문화를 매개로
극한까지 펼쳐지며 이를 통해 피겨스케이팅은 보다 진일보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우사인
볼트의 개인적인 신체능력에 의해 100m의 기록이 갱신되듯이.

엘리트스포츠가 생활체육과 준별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엘리트스포츠가 이미 존재하는
운동문화, 즉 개별 스포츠 종목에 참여하는 개인의 뛰어난 신체능력을 통해 보다 발전된
운동문화로 전승되는 과정이라면, 생활체육은 한 개인의 신체능력이 특정 스포츠 종목을
행함으로써 보다 발전된 신체능력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말한다.

이를 알기 쉽게 설명하면 마라톤이 생활체육에서는 심폐지구력과 체중감량 등의 개인적
신체능력의 향상을 목표로 하지만 그것이 엘리트스포츠로 전환하면 마라톤 자체의 질적 변화
즉 새로운 기록 작성이 목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엘리트스포츠와 생활체육은 각기 문화적
위상을 달리 한다. 엘리트스포츠가 해당 스포츠의 질적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면 생활체육은
그 양적 변화와 깊은 연관을 갖는다. 이런 까닭에 생활체육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엘리트
스포츠의 발전을 담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엘리트스포츠에서 필수적인 고도의 신체능력은
전문성과 체계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배드민턴 동호회의 양적 팽창과 ‘이용대’라는 걸출한
엘리트 선수의 배출 사이에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생활체육의 저 발전을 엘리트스포츠의 비대화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그 둘을 동시에
끌어 올리는 정책과 인식의 전환이다. 엘리트스포츠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생활체육의 질을
견인한다. 아니 견인하여야 한다. 은퇴 후의 김연아와 박태환이, 혹은 그들을 롤 모델로 삼았던
엘리트 선수 출신들이 어린이와 직장인을 대상으로 피겨스케이팅과 수영을 가르치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엘리트스포츠는 생활체육의 적이 아니라 희망이 되어야 한다. 다만 그 피드백의 고리를
어떻게만들 것인가가 향후의 과제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엘리트스포츠에 더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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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