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승건(서울대학교/시간강사)


현대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스포츠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거의 매일 중계 방송되는 프로 스포츠는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고, 스포츠 관련 산업은 타 산업을 앞지르며 경제의 중심에서 우리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게다가 프로 스포츠맨은 여느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매스컴의 표적이 되어 공인으로서 대접을 받는 등 이제 스포츠는 특정 운동인의 전문영역으로서 국위를 선양하는 분야를 넘어서 선망의 인기 직종으로 부상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현대의 스포츠에 대한 호감은 대중과 호흡하려는 현대의 대중성이 갖는 취미(趣味, taste)의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사실, 현대 이전의 문화는 엘리트 중심의 고급문화였다. 예술 역시 순수예술(fine-art)이 주도하는 지성중심의 고도의 세련된 고급문화가 예술사의 주류를 형성해 왔다. 여기에서는 미가 예술의 주제였다.


                               고대 그리스의 항아리에 표현된 레슬링 장면. 생활 용기에 
                               그려질 만큼 그들의 스포츠 문화는 일상이었으며 대중적
                               인기가 있었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예술에서 추구하던 미란 무엇일까? 일상에서 우리는 ‘미인(美人)’, ‘아름다운 꽃’ 등을 언급한다. 즉 ‘사람인데 아름다운 사람’을 그리고 ‘꽃인데 미적 요소가 특질로 있는 꽃’을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위에서 말한 ‘미인’과 ‘아름다운 꽃’은 정말 ‘아름다운 것(the beautiful)’일까? 이것들에는 모든 사람이 동의할 만한 미적 특질(aesthetic quality)이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근대미학에서부터 ‘미적 특질의 결과로서 미’라는 관념에 대한 회의가 일기 시작했다. 즉 칸트는 대상에서가 아니라 ‘어떤 대상의 현존의 표상과 결합되어 있는 만족’에서 미를 찾았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미란 대상의 특질이 아니라 그것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주관의 판정능력으로서 ‘취미’를 의미한다. 그것도 그 규정근거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감성적(aesthetic)’인 역할로서 말이다.


스포츠맨은 자기만족에서 기쁨을 얻는다!
따라서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미학사에서는 두 가지 미가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하나는 미적 특질로서 객관적인 미와 다른 하나는 주관적인 측면으로 파악되는 주관적인 미가 그것이다.


                                           스포츠맨은 자기만족에서 기쁨을 얻는다!

 일반적으로 미는 인간의 정신활동 중 예술 속에서 추구한다고 알려져 있다. 즉 예술은 성스러움(聖)을 추구하는 종교, 선(善)함을 추구하는 도덕, 진실다움(眞)을 추구하는 학문과 더불어 인간의 정신활동으로서 미를 추구하는 가치 활동이라고 규정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는 이와 같은 인간의 정신활동의 영역에 스포츠를 포함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듯이 스포츠는 인류의 오랜 동반자이다. 고대 그리스의 문화여명기에 있어서도 스포츠는 그들 문화 속에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육체적 활동을 저급한 것으로 취급했던 서양의 중세시대에도 스포츠는 여전히 인기를 누르며 행해졌으며, 사유의 세계를 인간 최고의 영역으로 간주하던 근대시대마저도 스포츠 문화의 꽃으로서 올림픽의 재정비가 있었다.        

   

                              스포츠 관람객 역시 멋진 플레이에 박수를 보내며 즐거워한다!

 

그렇다면 스포츠 세계에서의 미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먼저, 객체적 대상으로서 스포츠에서의 미적 특질과 관계되는 미를 언급할 수 있고, 또한 그러한 대상과 나를 연결시켜 거기에서 표상되는 나의 만족이라는 주관적 판단, 즉 개인의 취미판단에서 파악할 수 있다.

결국, 현대에 이르러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대중의 눈높이와 취미에 걸 맞는 문화에로의 관심이 높아졌다. 그 결과 미를 추구하던 인간의 활동으로서 예술은 더 이상 과거의 미를 추구하지 않게 되었다. 즉 진지한 것, 고상한 것 보다는 가볍고, 흥미롭고, 매력적이고, 일상적인 것이 문화의 핵심이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화의 주변부로 여겨져 왔던 스포츠도 대중문화의 일부로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현대적 문화상황 속에서 스포츠의 미적 세계를 파악해 볼 수 있겠다. 즉 스포츠는 예술 못지않은 인간의 정신 영역으로서 미의 가치에 대한 흠모의 활동이며, 그 결과 스포츠를 실행하는 사람은 물론 그것을 관람하는 사람에게 ‘미적 경험(aesthetic experience)’을 환기시키는 문화 활동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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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이승건 (서울대학교 강사)


현대철학자들 중에는 현대화의 과정을 이성을 통한 합리화의 과정이라고 보곤 한다. 특히 이러한 합리화의 가장 빛나는 실현은 과학․공업․기술의 발전을 통한 자연의 정복을 꼽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화의 합리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자멸의 수렁으로 몰고 갔다는 패러독스 또한 지적되고 있다.

즉 지금까지 과학적 학문과 기계적 발명의 발전을 인간 상태를 구제해 주는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찬양해 온 모더니스트들이 관점에 대해 반-모더니스트들은 기계의 인간화가 인간성의 기계화라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는 우려의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기계화에 대한 해독제로서의 예술에 대해 그 현대적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기술(技術)과 예술(藝術)은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불구대천의 원수관계처럼 보인다. 아니, 기계화의 과학시대에 대해 예술의 감성(pathos)이 온전치 못한 사회 상태를 치유하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언제부터 이러한 관점이 나타난 것일까?



                                     우리 전통문화에서 기술(공예)를 상징하는 치우천황



원래 예술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 ‘테크네(technē)’를 번역한 라틴어 ‘아르스(ars)’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테크네와 아르스가 오늘날 ‘아트’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 시대의 테크네 ― 로마와 중세, 심지어는 근대 초기인 르네상스 때까지도 쓰였던 아르스 ― 는 솜씨, 즉 물품, 가옥, 동상, 배, 침대, 단지, 옷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솜씨뿐만 아니라 군대를 통솔하고 토지를 측량하며 청중을 사로잡는데 필요한 솜씨까지를 뜻했다. 이 모든 솜씨들이 ‘테크네’라 지칭되어 건축가, 조각가, 도공, 양복장이, 전략가, 기하학자, 변론가 등의 ‘테크네’라 불렸던 것이다.
 

이와 같은 예술의 용어에 관한 현대 이전의 개념 속에는 예술과 기술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이때의 솜씨는 규칙에 대한 지식에서 발휘되는 것이어서 규칙과 법칙 없이는 테크네도 존재할 수 없었던 터라, 예술 또한 지식의 결과로서 즉 이성(logos)의 산물로서 과학기술과 구별될 수 없었다. 결국, 현대화의 합리성으로서 기술에 대한 경계는 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기술을 상징하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



그렇다면 스포츠에 있어서 기(技)와 예(藝)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포츠가 기술의 결과인지 예술의 결과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때 열광하며 박수를 보내기도 하고 아쉬워하며 야유를 보내기도 한다. 스포츠의 어떤 면이 우리를 이와 같은 상태로 이끌고 있는 것일까? 바로 스포츠맨의 경기를 이끌어가는 플레이와 플레이로서 진행되는 경기 그 자체가 우리를 열광케 하는 것이다. 즉 어떤 때는 스포츠맨의 멋진 플레이에 매혹당해 그에게 그리고 경기 자체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또 어떤 때는 어처구니없는 그의 플레이에 실망하여 그 경기에 대해서도 비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의 스포츠맨의 플레이는 기술로 읽어야 하는가? 아니면 예술로 읽어야 하는가? 모든 스포츠맨은 자신의 분야에서 경기력 향상을 위해 경기기술을 갈고 닦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연마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할 것이다. 스포츠맨은 스포츠 경기와 관련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을 담금질하여 관중 앞에서 경기를 치른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경우 스포츠는 스포츠맨에 의한 경기기술의 완벽한 소화라는 명제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스포츠는 예술적인 측면에서 이해되기도 한다. 본디 예술은 창작자와 감상자 그리고 그 창작의 결과로서 작품이라는 기본 구조 속에서 성립된다. 스포츠 또한 경기수행자로서 스포츠맨과 관중 그리고 관람꺼리로서 경기 자체라는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스포츠맨은 마치 예술분야에서의 창작자가 그러하듯이 숙련된 기술과 결합된 결과로서 경기 그 자체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관중들은 스포츠맨들에 의해 제공되는 관람꺼리로서 경기를 관전하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는 감정의 체험을 겪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포도의 표현으로 감성(예술)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스포츠에 있어서 기(技)와 예(藝)는 현대철학자들의  주장처럼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두 성질로서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이심동체(異心同體)인 것이다. 마치 이것은 그리스 신화 속에서의 기술을 상징하는 헤파이스토스처럼, 그의 기술력이 만든 올림포스의 신전과 공예품들이 더 없이 아름다웠다고 하는 찬사 속에서 확인되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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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


이 세상에는 인류가 가장 선호하는 5가지 공통 언어가 존재한다. ; ‘돈(Money), 정치(Politics), 예술
(Art), 섹스(Sex), 그리고 스포츠(Sport)’가 그것이다.

그 중 5번째에 해당하는 ‘스포츠’는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인생을 살맛 나게 해주는 가장
건전한 필수 콘텐츠다.

고전적 의미의 인류 3대 필수요소는 의식주(Food, Clothing, and Shelter)이지만 현대사회에서 신 개념적
3대 필수요소는 ‘청정한 물’(Clean Water), ‘맑은 공기’(Clean Air), 그리고 ‘만인의 스포츠’(Sport for all)
라고 정의해 보고 싶다.

스포츠는 자나 깨나 직접 실행하든 관람하든 응원하든 뉴스매체를 통해 접하든 간에 하루도 스포츠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스포츠는 인류선호 5대 언어들 중 나머지 4가지 언어적 특성 모두를 내재하고 있으며,  스포츠의 인류
보편타당성 결과물이 바로 올림픽이다.

올림픽은 지구촌 정치의 변모하는 얼굴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국제적 논란거리를 만들어
주기도 하였고, 문화 / 교육 / 예술 / 육체적 / 미적 율동이 한데 어우러진 복잡 미묘 다단한 종합
축제의 한 구석에 인간의 돈에 대한 집착의 무대를 꾸며주기도 하는 기기묘묘한 인류생태 심리학적
문화유산의 최대 걸작품이기도 하다.

40억 지구촌 가족이 열광하는 가운데 지난 1996년 근대 올림픽이 드디어 100주년을 기념하는 올림픽
(미국 애틀랜타)이 성황리에 치러졌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주최국 중국이 지금까지 세계최강
이었던 미국을 누르고 새로운 1인자 자리로 등극하는 등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기도
하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최근 국제적으로 실시된 ‘즉석 인지도 조사’(Spontaneous Awareness Survey)결과 올림픽이 ‘월드컵
축구’의 2배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윔블던 테니스대회(Wimbledon Tennis Championships)’보다 3배,
 ‘포뮬러 원(Formula One Motor Racing Grand Prix)자동차 경주대회’보다 4배,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사이클 대회’, ‘수퍼볼 미식축구대회(American Super Bowl)’, ‘월드시리즈 야구대회(World
Series of Baseball)’ 보다 6배, 그리고 ‘미국 컵(America's Cup)’ 및 ‘데이비스 컵 테니스대회(Davis Cup)
’보다는 무려 10배나 더 높은 인지도를 보여 주었다.

 

                                       (IOC올림픽박물관에 전시된 1988 서울올림픽 코너)

그러한 올림픽 중1988년 서울올림픽은 前 사마란치 IOC위원장이 역대 최고의 올림픽(The most
Universal and the Best Games ever)이라고 극찬 한 바 있다.

1988 서울올림픽유치가 확정된 1981.09.30 서독 바덴바덴 IOC총회까지 대한민국이 유치할 당시 한국이
개최한 국제스포츠행사라고는 1975년 제2회 아시아 체조선수권대회, 필자가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
재학시절 통역으로 참가하여 스포츠 계와 숙명적 인연을 맺게 해준 바 있는 1978년 제42회 세계 사격
선수권대회, 1979년 제1회 세계 공기총 선수권대회 및 제8회 세계 여자농구선수권대회 그리고 1980년
아시아 역도선수권대회가 고작이었다.

1988 서울올림픽유치 당시 한국은 한국의 국제적 지명도, 신인도, 인지도 등이 대외홍보부재로 별 볼일
없었다. 치명적 핸디캡이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그 당시 대한민국의 위상은 Japan Times지에 게재된 “한국정부가 일본에 미화60억불
차관을 요청하였지만 그 직후 개최된 한-일 각료회담 시 교섭이 잘되지 않고 있다”는 보도에 의한 경제
개발도상국이라는 것과 미국 TV 드라마 “MASH(Mobile Army Surgical Hospital: 군대 이동외과병원)”을
통해 한국은 1950-1953 한국동란이란 전쟁을 치르고 미군이 도와주는 열악한 환경의 미국원조대상국
이자 경제여건이 어려운 분단국이미지 그 자체였다.

사실 우리나라 스포츠가 세계적인 강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데에는 스포츠외교의 힘이 절대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발점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유치한 1981년 9월30일 서독 ‘바덴
바덴 대첩’이다.

그 후 1994년 제12차 파리 올림픽 콩그레스 겸 제103차 IOC총회에서 당시 김운용 IOC부위원장 겸
WTF총재 겸 KOC위원장의 주도 면밀한 전략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포츠외교력 덕분에 태권도가
역사적인 올림픽정식종목으로 채택되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대회 개 폐회식장에서 남북한선수단이
공동 입장한 것은 우리스포츠외교사에 길이 남을 쾌거였을 뿐만 아니라 지구촌 가족들에게 평화와
감동의 진한 메시지를 전한 불멸의 발자취로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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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김정효 (신도봉중학교 교사) 

김연아의 환상적인 ‘점프’에서 우리는 인간의 신체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전율한다.
마지막 동작이 멈춘 후 클로즈업되는 그녀의 도발적인 표정은 마치 예술과 스포츠의 경계를
되묻는 듯 하지 않는가. 혹자는 시상식의 태극기를 바라보며 더불어 게양되는 대한민국의
위상에 가슴 뿌듯해 하기도 한다. 어느새 김연아는 꿈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온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전령사는 그녀뿐이 아니다. 박지성과 장미란, 태극기를
가슴에 달았던 베이징올림픽의 야구선수들도 모두 그녀에 버금가는 희망의 전령사들이었다.
이들을 흔히 우리는 ‘엘리트스포츠 선수’라 부른다. 그리고 미디어는 시청자들을 흥분시킨
그들의 공적을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한다. 그들이 국민에게 안겨준 꿈과 희망의 질량을
계산하면 이러한 찬사는 수사학적 미사여구나 언론의 자극적 선동을 뛰어넘는다. 

 
그러나 막상 그들을 길러낸 우리 사회의 스포츠인프라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주저하거나
얼버무린다. 말하기는 한다. WBC의 준우승 이후 돔구장의 부재가 마치 우승을 놓친 결정적인
이유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는 했다. 왜 김연아의 우승에는 열광하면서 제2의 김연아를
만들어 낼 물적 토대와 정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걸까. 차라리 후진적 환경을 적당히
방치함으로써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승리의 시나리오를 즐기는데 우리는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혹자는 말한다. 우리나라의 스포츠정책이 너무 엘리트스포츠에
편중되어 있다고. 이제 체육정책의 방향은 엘리트스포츠라는 편협한 민족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 모두가 즐기는 생활체육, 혹은 사회체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그들의 따끔한 질책과 비판에는 충분히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엘리트스포츠가 생활
체육과는 전혀 다른 원리적 토대를 가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 물론 국가에
의한 스포츠의 이데올로기적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할 경우 엘리트스포츠는 한국 사회만의
독특한 스포츠문화로서 그 한계를 가진다.

박태환의 금메달이 잠시 국민을 흥분시키는 국가적 오락이거나 실체 없는 민족주의의 허상일
수 있다. 하지만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김연아와 박태환, 박지성 개인을 묻는 것이 아니다. 가령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양정모가 당시 체제 이데올로기의 선전에 커다란
몫을 한 것과는 별개로 그의 메달은 한국의 레슬링 문화의 중요한 성과이며 그 후 비약적인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해 왔다. 요컨대 스포츠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유효기간을 갖는
일시적이고 한정적인 것이나 그 문화적 내용은 역사적이고 또한 현재적이다.

스포츠는 문화의 형태로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문화 외적인 것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만큼 파급력이 크다는 사실에서 비롯할 뿐이다. 자연인이 아닌 스포츠 선수로서의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을 위해 존재한다. 그녀의 신체능력은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운동문화를 매개로
극한까지 펼쳐지며 이를 통해 피겨스케이팅은 보다 진일보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우사인
볼트의 개인적인 신체능력에 의해 100m의 기록이 갱신되듯이.

엘리트스포츠가 생활체육과 준별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엘리트스포츠가 이미 존재하는
운동문화, 즉 개별 스포츠 종목에 참여하는 개인의 뛰어난 신체능력을 통해 보다 발전된
운동문화로 전승되는 과정이라면, 생활체육은 한 개인의 신체능력이 특정 스포츠 종목을
행함으로써 보다 발전된 신체능력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말한다.

이를 알기 쉽게 설명하면 마라톤이 생활체육에서는 심폐지구력과 체중감량 등의 개인적
신체능력의 향상을 목표로 하지만 그것이 엘리트스포츠로 전환하면 마라톤 자체의 질적 변화
즉 새로운 기록 작성이 목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엘리트스포츠와 생활체육은 각기 문화적
위상을 달리 한다. 엘리트스포츠가 해당 스포츠의 질적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면 생활체육은
그 양적 변화와 깊은 연관을 갖는다. 이런 까닭에 생활체육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엘리트
스포츠의 발전을 담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엘리트스포츠에서 필수적인 고도의 신체능력은
전문성과 체계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배드민턴 동호회의 양적 팽창과 ‘이용대’라는 걸출한
엘리트 선수의 배출 사이에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생활체육의 저 발전을 엘리트스포츠의 비대화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그 둘을 동시에
끌어 올리는 정책과 인식의 전환이다. 엘리트스포츠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생활체육의 질을
견인한다. 아니 견인하여야 한다. 은퇴 후의 김연아와 박태환이, 혹은 그들을 롤 모델로 삼았던
엘리트 선수 출신들이 어린이와 직장인을 대상으로 피겨스케이팅과 수영을 가르치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엘리트스포츠는 생활체육의 적이 아니라 희망이 되어야 한다. 다만 그 피드백의 고리를
어떻게만들 것인가가 향후의 과제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엘리트스포츠에 더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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