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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몸에 관한 단상斷想



글/ 김식(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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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사회는 그 구성원들의 역량을 주로 생산하는 몸으로서보다는 소비하는 몸으로 발휘하도록 한다. 생산하는 몸의 역할을 위주로 조직된 삶은 규범적으로 규정되는 경향이 있다. 생산하는 몸의 역할이, 어떤 것을 요구하든 이를 행할 수 있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최저선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포부抱負가 사회적 동의를 얻는 것에 의존하는 과정에서, 꿈을 꾸고 갈망하고 추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상한선 역시 존재한다. 그 한계를 넘어선 것은 하나의 사치이며 사치를 바라는 순간, 일종의 죄책감마저 든다. 따라서 사회에 대한 순응이 주된 관심사가 된다. 주변인들보조를 맞추기 위해’, 하한과 상한을 확실히 정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라 할 수 있다.


소비를 위주로 조직된 삶은 규범 없이 살아야 한다. 그 삶을 이끄는 것은 유혹과 더불어 자꾸만 커지는 욕망, 한시적 소망들이다. 소비하는 몸의 사회는 보편적 비교의 사회이다. ‘사치라는 개념은 기실 별 의미가 없는데, 중요한 것은 오늘의 사치를 내일의 필수로 만드는 것이고 오늘내일의 차이를 최소로 좁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욕망을 필요악이라는 낱말로 대체시킬 규범이 없기 때문에, ‘순응의 기준을 측정해줄 수 있는 비교표도 없다. 주요 관심사는 따라서, ‘얼마나 충분한가?’의 문제가 된다. 늘 준비된상태인가, 기회가 오면 그 기회를 향해 뛰어오를 능력이 있는가, 예기치 않은 유혹에 맞추어 마름질된 새로운 욕망들을 개발할 수 있는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합류하기에충분한가 하는 것. 기존의 필요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정서가 낭비되지 않도록 하고, 이 새로운 정서를 흡수하고 경험할 능력을 억누르지 않도록 하는 데 충분한가 하는 것 말이다.

생산하는 몸의 사회가 그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기준으로 건강을 내세우면, 소비하는 몸의 사회는 그 구성원들에게 이상적인 균형 잡힌 몸매를 보여주기 위해 경솔을 떤다. 건강과 균형 잡힌 몸매, 이 두 용어는 종종 겹쳐지는 말로 여겨지고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결국 이 두 용어는 모두 몸을 돌보는 것, 우리가 우리의 몸이 이루기를 바라는 상태, 몸의 소유자가 그 소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따라야 할 관리 체제를 지칭한다. 하지만 이 두 용어를 동의어로 취급하는 것은 과실過失이다. 이는 모든 균형 잡인 몸매를 위한 관리 체제가 우리 건강에 좋은 것은 아니고 우리의 건강 유지를 도와주는 것이 우리를 꼭 균형 잡힌 몸매로 만드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건강과 균형 잡힌 몸매는 두 개의 아주 다른 담론에 속하며, 서로 다른 관심에 호소한다.

생산하는 몸의 사회에 있어서는 다른 모든 규범적 개념과 마찬가지로 건강에 대해 (Foucault가 말했듯이) ‘정상인비정상인간의 경계를 긋고 이 경계를 준수하려고 노력한다. ‘건강이란, 인간 육체와 정신의 적절하고 바람직한 상태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고안되어 할당된 역할을 수행하라는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육체적 심리적 상태를 가리키는데, 그러한 요구는 지속적이고 꾸준하기 마련이다. ‘건강하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어디에든) 고용 가능하다는 것’, (어떠한) 현장에서 제대로 일을 수행할 수 있고, (어떤) 고용인의 육체적 심리적 지구력에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일을 부지런히 해낼 수 있음을 뜻한다.

균형 잡힌 몸매(Bergson이 말했듯이) 전혀 고체적이지 않다. ‘균형 잡힌 몸매에 대해서 정확하게 꼭 집어 정의를 내릴 수는 없다. ‘균형 잡힌 몸매가 된다는 것은 유연하고 흡수력이 있으며 적응력이 있는, 아직은 겪어보지 못하여 미리 상술할 수 없는 정서들을 겪으며 생활 할 준비가 된 몸을 가졌다는 것이다. 균형 잡힌 몸매는 구체적 기준의 육체 능력은 전혀 지칭하지 않고, 그 능력의 확장 가능성을 지칭한다. ‘균형 잡힌 몸매는 예외적이고, 평범치 않은 것들을 흡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건강이 규범적인 것들을 고수하는 것이라면, 균형 잡힌 몸매는 모든 규범을 깨고 이미 달성한 기준 일체를 뒷전으로 밀어내는 능력을 중시한다.

개인들 사이의 기준에 도달하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요구이다. 균형 잡힌 몸매의 정도를 개인 간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전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균형 잡힌 몸매는 (‘삶에서 얻은경험, ‘느껴서 얻은경험이라는 의미에서) 주관적 경험이다. 모든 주관적 상태와 마찬가지로, 균형 잡힌 몸매가 되는 경험은 개인 간 비교는 물론이고 개인 간 대화에 알맞은 방식으로 언급되는 것도 지극히 어렵다. 만족과 쾌락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추상적 용어로는 파악될 수 없는 느낌들이다. 파악되려면 이 감정들은 주관적으로 경험되어야한다. 나는 나의 감정이, 당신의 감정만큼 깊은지 흥미진진한지 혹은 만족스러운지결코 확실히 알 수 없다. 균형 잡힌 몸매를 추구하는 것은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목표물을 쫓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언제 그 목표를 달성했다고 판단할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건강에 대한 관심과는 달리, 균형 잡힌 몸매를 추구하는 데는 자연적 종결이 없다. 균형 잡힌 몸매를 추구하는 이들이 확신하는 한 가지는 그들이 아직은 충분히 균형 잡힌 몸매가 아니라는 것, 따라서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은 (체온이나 혈압처럼) 수치화, 측정화가 가능한 기준들에 의해 정의되고, ‘정상비정상이라는 분명한 구분을 갖추고 있기에, 원칙적으로는 충족 불가능한 고민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따라서 건강한 상태에 도달하고 그 건강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분명해진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건강하다고 표명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어떤 치료적 관점에서 누군가의 건강이 회복되었고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결정하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그러하다.

그러나 사실상 건강이라는 규범을 포함하여 모든 규범의 위상은, 오늘날 무한하고 불특정한 가능성들로 가득한 사회에서 심각하게 흔들리고 약화되었다. 어제는 정상적이고 만족스럽게 인정되었던 것들이 오늘은 걱정을 끼치거나 심지어는 연민을 자아내고 치료가 필요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첫째, 인간의 몸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상태가 되기 때문에 의학을 통한 개입이 합법적으로 필요해졌다. 제공되는 의학 치료법도 그대로 머물러 있지는 않다. 둘째, 한때는 명확히 정의되었던 질병개념이 더할 나위 없이 불분명하고 모호해졌다. 이로 말미암아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밤낮으로 질병과 싸워 반드시 제거해야만 한다. 건강에 대한 관심은 질병과의 영원한 투쟁이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삶의 체제가 의미하는 바도 고정되지 않는다. ‘건강 식단개념은, 추천되는 식단들이 제공되기도 전에 신속히 바뀌어 간다. 언론매체를 통해, 건강에 좋고 무해하다고 여겨졌던 영양식의 좋은 효과를 충분히 만끽하기도 전에, 장기적으로는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발표가 공개된다

과거의 다른 치료 과정 때문에 생긴 의원성醫原性 질환이 대단히 넓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건강관리는 본래의 속성과 다르게, 균형 잡힌 몸매를 추구하는 것과 자꾸만 닮아간다. 균형 잡힌 몸매의 추구는 지속되며, 결코 완전한 만족을 가져오는 법이 없고, 현재의 진행 방향이 제대로 된 것인지 불확실하며, 추구하는 중에 다양한 불안을 야기한다. 균형 잡힌 몸매는 한때 건강관리에서 자기 확신의 토대가 되었던 바, 즉 건강 척도의 측정 가능성과 그에 이어지는 치유 경과의 측정 가능성을, 대부분의 경우 수포水泡로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모방한다. 이러한 포부는 예를 들면 여러 몸매 관리 체제가운데서 체중 관찰이 왜 눈에 띄게 인기를 누리는지 설명해준다. 균형 잡힌 몸매 만들기에서는 허리 사이즈가 줄고 몸무게가 빠지는 것 두 가지가, 건강 진단을 할 때 체온을 재는 것이 그런 것처럼, 실제로 측정해 어느 정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외관상의 소득이기 때문이다.

건강 추구는 그 자체가 압도적으로 질병을 일으키는 요소가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개인들을 대상으로 병을 진단하지 않는다. 점점 증가하고 있는 진단의 진정한 대상은 확대된 가능성들, 즉 진찰을 통해 얻은 환자의 상태에서 이후 어떤 일이 생길 수 있을지를 억측하는 것이다. 건강은 점차 위험을 최적화하는 것과 동일시되고 있다. 이는 어쨌든, 균형 잡힌 몸매를 얻고자 열심히 훈련해온, 21세기를 살고 있는 소비 사회의 몸들이 의학도들에게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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