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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마술사, 프로농구 부흥의 주문을 외워라.

 

 

글 / 최진경 (스포츠둥지 기자)

 

 

          올해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은 중계방송에서 푸대접을 받았다.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경기에 밀려서 스포츠 채널이 아닌 SBS CNBC에서 중계를 했다. 이는 프로 농구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리그 초반 큰 의미를 갖기 힘든 프로야구가 지상파 중계를 탄 것에 비하면 완전한 ‘찬밥’ 대우였다.

 

만원 관중과 텅 빈 관중석, 프로야구와 프로농구의 현 위치다. ⓒ최진경

 

 프로야구는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이후로 꾸준히 관중과 시청률이 증가하고 있고 이에 힘입어 9구단 창단, 10구단까지 창단이 확정됐다. 농구와 야구의 격차를 이렇게까지 벌어지게 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엘넥라시코’ 라는 단어에도 들어 있다. 이 발음조차도 생소한 단어는 야구팬이라면 알고 있다. 야구팬이 아니더라도 해외축구에 관심을 많이 가진 이라면 비슷한 단어에 익숙하다. 바로 ‘엘클라시코’. 스페인어로 직역하면 고전의 승부라는 뜻이다. 이는 단어 자체의 의미보다 스페인 프로축구 세기의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경기로 더 유명하다. 여기에 착안하여, 항상 혈전을 벌이는 한국 프로야구의 LG와 넥센의 경기를 ‘엘넥라시코’ 라고 한다.

 

엘클라시코를 대표하는 두 얼굴, 메시와 호날두

 

 

사실 LG와 넥센의 경우 라이벌이 될 요소가 별로 없었다. 비록 같은 서울을 연고로 하긴 하지만 지역 라이벌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같은 구장을 쓰며 전통의 라이벌인 두산이 LG에겐 더 맞는 상대이다. 넥센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현대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특별히 LG와 연관성을 찾기가 힘들다. 라이벌이 단순히 한두 시즌 치열하게 경쟁했다고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이는 라이벌관계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농구계에서 가장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야구계는 ‘엘넥라시코’라는 단어 아래 훌륭한 신흥 라이벌을 떡하니 만들어 냈다. 사람들은 당연히 이들의 경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해당 팀의 팬들은 이러한 라이벌전을 통해 팀에 대한 더 큰 애정을 쌓아간다.

 

특별함을 부여하는 마법, ‘별명’
비단 ‘엘넥라시코’, 뿐만이 아니다. 야구는 국내 프로스포츠 중에서도 여러 가지 말을 가장 잘 이용하고 있는 스포츠다. 선수들에게 붙는 별명도 그 중 하나다. 개인의 특색을 잡아서 부르게 되는 별명은 이름보다 더 기억하기 쉽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특히 운동선수의 경우 플레이의 특징을 담아내는 별명이 많기 때문에 선수로서 자신을 각인시키는데 큰 도움이 된다. 야구선수의 경우 조금만 특이점을 보이면 바로 별명이 붙는다. 오죽하면 한화 김태균의 경우에는 별명이 너무 많아서 별명이 ‘김별명’이다. 외국의 경우에도 별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기본기가 탄탄해서 별명이 기본기인 NBA의 ‘Mr.fundamental’ 팀 던컨에서부터, 자신이 한 경기에 득점한 점수가 별명이 된 ‘Mr.81’ 코비 브라이언트까지 이유도 다양하다. 더 나아가 미국의 경우에는 선수 외의 사물에게도 별명을 붙이며 의미를 만들어 나간다. 미국 프로야구팀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 팬웨이 파크는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좌익수 방면의 외야 비거리가 극단적으로 짧은 대신 극단적으로 넓고 높은 벽이 있다. 초록색인 이 벽을 ‘그린 몬스터’라고 부른다. 보스턴의 명 경기들을 보면 흥분한 캐스터가 ‘그린 몬스터를 넘깁니다!’, ‘그린 몬스터를 직격합니다!’ 라고 소리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게 단순히 ‘좌측 펜스를 넘깁니다!’ 라면? 아마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에게는 끔찍한 가정일 것이다.

 

거대한 녹색 벽, ‘그린 몬스터’

 

 

베이브류스? Basketball, Ryu can do it!
국내 농구계에서도 이런 언어의 중요성, 특히 별명에 대해서 심도 있는 접근을 한 적이 있다. SK 프로농구단의 경우 2008-2009 시즌 유니폼에 선수들의 이름 대신 별명을 새기고 경기에 출전했었다. 하지만 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금방 기존의 유니폼으로 돌아왔다. SK가 실패한 이유는 인위적인 별명과 그 별명에 맡는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을 세우지 못한데 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농구계가 ‘언어’가 활동하기 힘들다는 점에 있다. 농구중계를 보면 타 중계, 특히 야구중계에 비해서 딱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야구중계의 경우 캐스터와 해설이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는 등 분위기가 더 자유롭다. 또한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도 진취적이고 창의적이다. 올 시즌 초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프로야구팀 한화의 연패기간 동안 한화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맡은 아나운서가 연속된 실책을 보며 ‘한화 이글스가 한화 팬들을 성불시키려 합니다.’ 라는 재치 있는 멘트를 했다. 농구 중계에는 이런 파격이 없다. 현 프로농구 최고의 스타 중 하나인 전태풍이 활약을 하면 ‘경기장에 태풍 주의보가 발령됩니다.’ 라는 멘트 정도는 할 법도 한데 그저 ‘전태풍 선수가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고 있습니다.’로 끝날 뿐이다.


비단 중계 뿐 만이 아니다. 현 프로농구는 유독 기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인터뷰이가 많다. 바로 모법적인 대답만을 하는 사람이다. 농구의 위기가 언행을 위축되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길이다. 결국 언어에 있어서 전반적인 개선이 농구계에는 필요하다. 지난 4월 14일 열린 류현진의 선발등판 경기는 좋은 예를 농구계에게 보여준다. 류현진이 3안타를 치며 특색 있는 활약을 보이자, 해설가는 이를 보며 ‘베이브류스’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이와 동시에 팬은 ‘Ryu can do it.' 이라는 센스 넘치는 피켓을 들고 열광했고, 카메라는 이를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비춰줬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베이브류스‘와 ’Ryu can do it.'은 여러 매체를 통해서 계속해서 회자됐다.


한 때 한국 농구는 마술사들의 활약을 바탕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코트위의 마술사’ 강동희 전 감독이 그랬고 ‘매직핸드’ 김승현 또한 마술사였다. 이 외에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마술같은 플레이가 코트를 수놓을 때 팬들은 열광했다. 이들이 전부 은퇴하거나 선수생활의 말년을 보내고 있는 지금 한국 농구는 다시 한 번 마술사의 등장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마술사, 언어의 마술사가 솜씨 좋은 입담으로 코트의 마술에 다양한 매력을 만들어주기를 농구 팬으로서 간절히 기대해 본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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