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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만 있는 체육계의 징계, 합리적 분쟁 해결 방안은 없는가?

     

                                                                                                                                글: 김가람

5월 19일,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쇼트트랙 종목 관련자에 대한 징계가 확정되었다. 
선수들에게 1년 자격 정지, 코치에게 영구제명, 감독에게 3년 정지의 징계가 내려졌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많은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 징계가 최종적으로 결정되기까지의 과정은 사실상 투명했고
공정했다. 대한빙상연맹은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등과 함께 공동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그
결과 대한빙상연맹 간부의 외압 증거는 찾지 못한 반면, 담합의 정황적 증거는 발견했고 그를
바탕으로 그 수위에 맞는 징계를 권고했으며, 이 최종 징계 결과는 공동조사위원회의 권고와 정확
하게 일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징계 결과에 대해 불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사건의 포괄적
책임 단체로 여기고 있는 ‘대한빙상연맹’ 스스로가 최종 심판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바로 ‘중재’(Arbitration)라는 제도가 한국 스포츠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현직 스포츠계에 종사하는 체육인 중에도 ‘한국스포츠중재위원회’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콘텐츠출처 : 오픈애즈(http://www.openas.com)
                                                사전 허가 없이 콘텐츠의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중재’(Arbitration)란 분쟁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공정한 제3자(중재인단)에게 판정을
맡겨 중재인단의 판단에 따라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다.
중재는 분쟁 당사자들이 중재인단의 판정
(Award)에 승복해야 한다는 면에서 재판과 유사하지만, 판사가 아닌 제3자에게 분쟁 해결을 맡긴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중재의 가장 큰 장점은 전문성과 신속성이다. 스포츠의 경우, 일반 선수들의 전성기가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선수 입장에서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분쟁이 발생해도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 수년이 소요되는 사법기관에 고소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사법절차에
호소하여 분쟁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인 반면, 스포츠 중재 기관인 '국제스포츠
중재재판소'(CAS) 에 호소할 경우, 올림픽 기간에 발생한 관련 분쟁은 ‘24시간’ 내에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스포츠의 특성을 합리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스포츠 강국인 미국의 경우, 모든
스포츠 관련 분쟁은 법정이 아닌 ‘미국중재협회’(AAA)를 통해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시대적 추세에 동참해 2006년 ‘한국스포츠중재위원회’(KSAC)를 창설했었다.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법학 교수, 변호사, 스포츠인 등 수 많은 전문가가 참여해 야심 차게 만들어진
단체였지만, 그 실적이 미미해 결국 2009년 대한체육회는 KSAC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말았다.

KSAC가 미국의 AAA나 CAS 등과 같이 성공적인 분쟁 해결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한계는, 양당사자가 KSAC의 중재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중재 합의’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한 당사자의 고소로 절차가 시작하는 재판과 달리, 중재는 양 당사자가 ‘합의’를
해야 비로소 그 절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애당초 선수보다 우위에 있는 협회의
입장에서는 굳이 위험부담을 진 채 중재 합의에 응할 필요가 없었고, KSAC는 중재합의를 하지 않은
협회를 제재할 수 있는 어떠한 근거도 갖고 있지 못했다.

두 번째 한계는, 재정의 비 독립성이다. KSAC는 그 재정의 상당 부분을 대한체육회의 지원에 의지
했었다. 게다가 대한체육회는 KSAC의 중재인에 대한 일정 부분 추천권을 갖고 있었다. 대한체육회의
이사회가 각 스포츠종목 협회의 회장들로 구성되었음을 감안하면, KSAC가 선수와 협회의 분쟁을
공정하게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가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을 무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의 ‘아마추어 스포츠법’ (The Amateur Sports Act) 에서는 ‘모든 스포츠 분쟁은 재판이 아닌 중재로
해결한다.’는 규정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선수와 협회 간에 분쟁이 발생했을 시,
협회로 하여금 의무적으로 중재 합의에 임하게 하고 AAA의 중재판정에 따르게 함으로써, 재판으로
인한 시간적, 경제적 피해를 줄이고, 무엇보다 선수 입장에서 재판을 하지 못해 협회로부터의 피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또한 AAA는 KSAC와는 다르게 스포츠와 전혀 관계없는 독립된 중재기관이기 때문에, 최대한의
공정성을 보장받고 있다. CAS 또한 창립 초기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하위 조직으로 시작
했지만,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지금은 별개의 독립된 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다.

AAA와 CAS의 사례는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다. KSAC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중단한 지금이 바로 적절한
시점일 것이다. 관련 스포츠 규정에 ‘모든 스포츠 분쟁은 중재로 해결한다.’는 조항을 만들고, 그
중재를 담당하는 독립된 기관을 구성하면, KSAC가 가지고 있던 두 가지 한계가 해결된다. 물론 중재를
강제하는 조항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스포츠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스포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는 중재인단을 통한 신속한 분쟁해결이,
법리적으로 분쟁을 해결해야 하는 법원을 통한 분쟁해결보다 효과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각 협회에서 각 종목의 선수들과 분쟁이 생겼을 때, 우선적으로 협회 내에서, 그 이후에는 대한
체육회에서 분쟁을 해결하고 있으나 이제는 각 협회들이 이러한 ‘심판권’을 포기함으로써 제3자에게
판단을 맡기고 그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합의를 의무적으로 하는 규정을 제정하여 진정한 스포츠
선진국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해야 한다.

만약 이번 같은 대한빙상연맹의 징계가 대한빙상연맹이 아닌 공정한 중재인단에 의해 내려졌다고
가정하면, 그것과 똑같은 결과라고 할지라도 국민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선수들이 밴쿠버, 베이징 올림픽에서 거둔 성과는 매우 놀라우며 이러한 성과를 만들어 낸 것은
선수들의 노력과 더불어 지금 대한민국 체육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이들의 공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는 성적에 만족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스포츠 선진국을 향해 현행 제도를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시기이다.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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